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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a and story Apr 08. 2021

고백은 충동이었을까, 축적의 결과였을까

자퇴 후 펼쳐진 삶 (6)


어릴 적 저는 얌전하고, 조용하고, 감정 표현이 적은 아이였어요.


웃음은 좀 많은 편이긴 했는데

사람들이 울고 슬퍼하는 부분에는 잘 공감을 못 하는 편이었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너무 부끄러워 했구요.


그래서 학창 시절 아이돌 한 번 좋아해 본 적이 없네요.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요즘은 빠져있는 아이돌이 한 명 있요ㅋㅋ)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몇 년에 한 번 아주 가끔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을 때가 있었는데, 누군가 그걸 발견하기라도 하면 창피할 것 같아서 질끈 참곤 했죠.


부끄럼이 참 많았어요. 수업 시간에 집중을 받기라도 하면 금세 얼굴 빨개지기 일쑤였구요.






그러던 제가

정말 수백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 끝에 해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라는 말. 부끄러워서 "좋아한다"라고 단정 지어서 말도 못 하고

끝을 흐리며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 말을 내 입으로 내뱉어 본 순간이

인생의 분기점이 된 것 같아요.


바로 다음 날 뾰로롱 하고 제가 변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니, 그때가 변곡점이었어요.




18살 여름,

반딧불이가 나타난

그 고백의 순간을 기준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면


전에는 속내 표현이 없고, 아니 어쩌면 스스로의 마음 자체를 잘 파악하지 못했고, 늘 세상의 보편적인 답을 찾아 헤매는 성향이었다면,


그 후로는 솔직하다는 표현을 참 많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살아온 지 10년째. 사실 제가 뭐가 솔직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 정도가 솔직한 거면, 다들 얼마나 가면을 쓰고 살길래?


다만, 세상 기준에 맞는 보편적이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답을 찾으려 하다가, 도저히 정답을 모르겠어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내면의 소리에서 힌트를 얻어가는..

어쩌면 직감을 따라가고 있고.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인생은 불공평하다. 우연을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뜻대로 살 수 있는 드문 기회가 기적처럼 찾아온다. 그때 필요한 것은 관습이 아니라 충동, 노력이 아니라 몰입이다. 그것이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충동에 몸을 맡겨 몰입할 순간이 올해가 아니라고, 그 주인공이 당신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던가."
                                                         
                                                                              - 안수찬 전 편집장의 '충동'이라는 글 중에서 -

http://h21.hani.co.kr/arti/reader/together/41124.html




사랑이라는 '몰입', 그리고 고백이라는 '충동'이 내 성향 자체, 그리고 인생까지 바꾼 것 같아서(그 진로가 달라졌거든요) 이 글에 너무 공감하고 감격했어요. 그래서 지인에게 좋은 글이라며 공유를 했는데, 그는 다른 입장을 표하더라구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저 글에서는 충동을 예측 불가하고, 랜덤하면서 큰 변화를 일으키는 요소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충동이라는 것도 현재 주변 환경, 그리고 살아오면서 형성된 자신의 성향에 영향을 받는 요소인 거야. 단지 갑작스러운 생각이나 행동의 변화가 있어서 그렇게 관측될 뿐이라고 생각해.
마치 지진과 같은 것이지. 지진이 일어나는 걸 관측했을 때는, 갑작스러운 충격과 변화 같지만. 이건 사실 랜덤하고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범퍼가 감당하고 있다가 임계점을 넘을 현상이거든.
삶이든 우주든, 잠깐의 갑작스러운 현상이 전반적인 틀에 변화를 줄 없다고 생각해.
진화생물학에서 수렴 진화라는 게 있어. 고립된 두 환경 사이에는 유전학적으로 전혀 다르지만, 생태계에 비슷한 역할을 하거나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생물들이 있지.
우주는 자기 회복이란 게 있어서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과거를 바꾼다 하더라도 미래는 크게 변하지 않아. 가치관, 습관 등 자신이 쌓아 올린 자신의 환경이 앞으로 나의 환경을 구축하는 요소지,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사건들은 전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 지인 최00 씨와의 카카오톡 대화 중에서 -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고백이

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의미에서 변곡점이긴 하지만,

고백 한 번이 제 성향 전체를 바꾼 건 아닐 거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전부터 그런 성향이 내재돼있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특목고 입학이, 명문학교 학만을 위한 공부에 좌절하방황에 빠진 시발점인 것 같지만. 사실 중학교 1학년 때 전교 1등 몇 번 해본 뒤로 이미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거든요.. 지적 호기심은 많은데, 학교에선 그걸 채워주지 못했었고. 성적을 위한 공부에는 이미 지쳐가고 있었는데 꾸역꾸역 부여잡아 왔었으니까요. 의지로...


고백도,

세상 기준에 맞추려 노력하는 게 버겁고, 감당하기 벅차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었던 제 욕망응축돼 결정적 변화를 만든 계기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어느 정도 우연과 충동도 작용을 했을 것 같지만요.






아무튼, 우연과 충동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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