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고 실망하고 생각대로 안 되는 것들이 삶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 같아. 대신 실망에 잠식당하지 않게 조심하고.
최종면접 탈락 통보를 받은 당일... 충격과 공포, 좌절과 슬픔 속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날 지인 A와의 대화.
Q. 자꾸만 눈물이 나...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가족들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데 자꾸 눈물 나와서 어떡해
= 우는 건 상관없는데 좌절하지는 마. 좌절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거 아니고 너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지도 않아.
가족들 앞에서 눈물 나오면 눈물 보이고 위로받고 슬픔을 나눠. 너무 감정을 숨기면 가족들은 벽을 느낄 수도 있을 거야. (내가 잘 못하는 거. 나도 자꾸 벽을 치더라)
Q. 좌절보단,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막막해..
= 아주 긴 배낭여행을 간다고 생각해. 여행을 하다 보면 버스도 놓치고 숙소 예약을 못할 수도 있지. 그냥저냥 이렇게 저렇게 대체재도 찾고, 예측하지 못했던 길로도 가다 보면 언젠가 멋진 곳을 발견하고 예쁜 길을 걷고 있을 수도 있을 거야.
아닐 수도 있지만 그대로 포기해버리면 실패만 남은 여행이 될 거잖아.
Q. 나 이제 기대 없이 살기로 했어. 수많은 사람들이고군분투하며 사는데, 왜 내가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반성 많이 했네. 아. ‘이놈의 세상이 내 기대와 상상대로 되지 않지’를 깨달으니까 오히려 좀 편해지고, 내려놓게 된다. ‘정말 인생은 알 수가 없구나.’ 오히려 그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나니 안정감이 들기도 해.
예전에 우리가 말했던 “기대는 실망을 낳는다.” 이거 알면서... 그럼에도 왜 난 자꾸 기대하고, 설레고, 뭔가를 좋아하게 됐을까...
= 설레고 실망하고 생각대로 안 되는 것들이 삶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 같아. 대신 실망에게 잠식당하지 않게 조심하고.
최선의 결과보다는 도전하는 과정을 즐기면서 사는 것도 좋은 듯
파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으니깐 내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고, 누군가 얻으면 내가 잃으니깐 결과나 얻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인생 피곤해질 듯. 물론 겁나 쩌는 사람은 다 뺏어가고 위에 군림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생각 안 하고 사는 게 속 편할 듯.
Q. 정말 힘들어 미치는 줄 알았네. 너무 충격적이었고ㅋㅋㅋ그런데 이 순간도 즐겨보도록 하자......
= ㅇㅇㅇ 나 옛날에 히말라야에서 진짜 살기 싫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때 풍경은 엄청 예쁘더라고. 지금은 추억이 되었고.
그냥저냥 순탄하게 살아오는 인생은 노잼 아니겠어? 소설이라고 쳐봐. 매일 밥 챙겨 먹고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 이루고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주인공의 소설. 노잼일 것 같지 않음?
Q. 근데 나 또 자꾸 눈물 나
= 물 마셔.
Q. 어떤 선배가 조언하시길, 그분도 지옥 끝에서 됐다고... 어쩌면 지금이 지옥이 아닐 수도 있다고 그러시는데. 그 말이 차라리 낫더라. ‘그래 지금보다 더 한 지옥이 있을 수도 있어’라고 체념하니까...
= 맞아. 잃을 게 많으면 더 주저하게 되기도 하지.
Q. 내가 지금 기분이나 생각이 오락가락하는데. 왜 또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왜 이렇게 아득하니~~~
= 원래 사는 게 그런 거임. 새벽 수산시장 탐방하고 후기나 남겨.
아니면 공사장 노가다 며칠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새벽에 현장 가서 체조하고 사람들 일하는 거 보고 매캐한 먼지 먹어보니깐 몸은 피곤한데 우울하거나 공허한 느낌은 잘 안 들었던 듯.
냉담하고 겸허한 사고방식도 가끔은 필요해.
운동 열심히 하고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잔소리한다면 운동하는 거 좋고. 미세먼지 많더라도 걍 달리기 같은 거 하는 게 결국 몸과 마음에 나을 듯.
Q. 그래 운동으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지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괜찮은 보조장치가 되더라.
= 뭐든지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기는 쉽지 않지. 도움되는 거 찾아가면서 조합하면 되지 뭐.
Q. 앞으로 또 얼마나 더 무너져야 할까....
= ㅇㅇㅇ 실패는 언제나 찾아올 수 있고 몇 번이든 계속할 거니깐.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게 중요한 듯!
Q. 그래 성장! 사실 성공과 실패가 무 자르듯 구분되는 것도 아닌 것 같구
= 나와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면 성공한 삶이지 뭐
Q. 하 그리고... 면접장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내가 정말 간절했고,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해서 자신감과 열정이 넘쳤었거든. 주변에도 면접 괜찮았다고,잘될 것 같다고설레발쳤었는데... 이 쪽팔림 어떡하니
= 어쩌겠어 쪽팔려해야지. 그냥 멋쩍게 웃으면서 잘 안됐다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Q. 지금껏 내 직감을 따라왔고, 그 덕에 나에게 잘 맞는 길들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번엔 아니었을까. A는 어때?
= 난 직감은 별로 없지. 계산적인 것과 행복에 관한 거지.
Q. 근데 그 계산이 틀렸을 땐 어떻게 해
= 틀린 거지. 배우는 거지 뭐. 어떻게 인생을 최적화된 경로로 가. 그리고 그렇게 살면 노잼일 것 같은데. 굴곡과 시련이 있어야 재밌는 삶인 듯.
Q. 하... 현실에 발 내딛고 살자. 꿈꾸는 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나 희망은 품지 말고, 일단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으로... A는 장기 계획이 어떻게 돼?
= 장기 계획은 딱히 안 세우는 편이라 모르겠네. 내년에 암에 걸릴지, 차에 치어 죽을지, 이민을 갈지, 핵전쟁이 날지 어떻게 알고 계획을 세워?
40살쯤에 이루고 싶은 막연한 목표를 가지고 한 걸음씩 천천히 가는 중이긴 한데. 정상 안 보고 산 오르는 것처럼, 언젠간 도착하겠지 뭐.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