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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a and story Apr 23. 2021

"탈락 사유는 알려주지 않아. 그래서 자꾸 곱씹게 돼"

[거리의 명언들] 20대 후반 취준생, 나와의 대화

탈락 사유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
그래서 자꾸만 곱씹게 돼.



Q. 며칠 전에 아는 언니가 한 말 있잖아. “참 많은 시련이 있었는데, 기억이란 필터를 거치면 흐뭇해진다.”

= 그래 맞아. 시련을 겪을 때 내가 이걸 결국 이겨낼 걸 알아. 그래서 너무 짜증 나는 거야. 내가 이걸 이겨낼 줄 알고,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 것 같아서. 나 감당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감당하라고 시련 주니까. 나 더 이상 감당 못 하니까 안 줬으면 좋겠는데... 나한테 또 시련 주고, 결국 감당해내고.     


저번에 최종면접 떨어지고 일주일 폭풍 오열했던 것도, 이젠 흐뭇해지고, ‘그래 그런 시기가 필요했지...’ 이러고 있어.     


기억이란 필터를 거쳐서 또 흐뭇해진다... 그래, 그 말 맞긴 맞는데.. 이제 그만 흐뭇해도 되니까 시련 그만 주면 안 될까?          



Q.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나?

= 오늘 또 면접 탈락 결과를 받아서지 뭐. 대한민국 20대 중후반 취준생이 우울증 안 걸리는 게 더 신기해. 한두 명 뽑고, 뭐 가끔은 맘에 드는 사람 없다고 안 뽑기도 하거든.


암튼 그 한 두 명이 되려고 몇백 명이 달려들어. 전형은 몇 달에 걸쳐서, 네 단계 이상씩... 서류, 필기, 면접1, 면접2... 결과도 바로바로 나오는 게 아니야. 맘 졸이면서 결과 확인할 때 그 심장 떨리는 느낌... 전체적으로는 합격 확률이 몇백 분의 1이야. 그다 보니 탈락 경험이 자꾸 쌓여. 그렇게 맘 졸이면서 결과 확인하길 여러 번, 그러다가 몇십 번씩 거절당한다고 생각해 봐. 불안장애나 우울증 안 생기기가 더 힘들지 않겠어?


그런데 사실 나도, 겪어보기 전까지는 이 정도로 뼈저리게 느끼진 못 했어... 청년 실업 어쩌구 뉴스에서 보면 그냥 기사 하나로 흘려보내던 시절이 있었지 어릴 땐.          



Q. 그래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 최악의 실업률이라잖아.

= 그래. 몇백 명 중에 합격한 한두 사례가 특이한 거지, 탈락하는 건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야.


그래도 아프고 힘들어.      


왜냐? 지원하는 동안엔 그 회사를 정말 가고 싶은 것처럼 환상을 주입해야 하거든. 자소서 항목, 면접 예상 질문을 봐. 환상을 억지로라도 주입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야 그나마.. 그나마 그 아득하고 먼 길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가능성이 생긴다구.     


그렇게 그 회사를 너무 가고 싶은 것처럼 환상을 스스로에게 주입해뒀는데, 불합격의 순간, 그 환상이 깨지는 거지.     


그리고 면접에서 떨어지면 자꾸 과거의 순간을 되돌려 보게 돼.


지나간 과거니까 그냥 잊으라고? 그러기엔, 실수를 줄여서 다 기회라도 잡아야 하니까..     


탈락 사유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 그래서 자꾸만 곱씹게 돼. 내가 왜 탈락했을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제대로 답변 못 한 게 있으면, 이럴 걸 저럴 걸 하면서 자꾸 후회스럽고. 답변을 괜찮게 한 것 같으면, 그럼 나 자체가 싫었던 건가? 싶고 그래.          



Q. 그래 뭐 지금 당장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 억울한 거라도 다 쏟아내.

= 부당한 것도 많아. 노트북 사용 가능하다고 고지도 안 해줘놓고, 가져온 사람은 쓸 수 있게 해주더라.


그리고 인사 담당자가 블라인드라고 학교나 친인척 등 유추될 수 있는 거 말하면 실격이라고 신신당부했었거든? 근데 들어가자마자 사장이 “학교 어디 나왔네”부터 말하더라니까.


그런데 이의제기 못 하고 있어. 나는 떨어졌으니까... 탈락자의 열폭으로 보겠지 싶고. 붙은 사람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Q. 그래서 뭐 이제 어쩔 거야?
 = 몰라. 주변에 떨어졌다고 자꾸 말해야 하는 게 참 송구스럽고. 오늘 폭식했고. 그런데 운동도 했어. 저녁엔 공부도 좀 했다. 그냥 일상 살아가고 있어.  내일은 폭식 안 할 거야. 속이 불편하고, 운동할 때 좀 무겁더라.




아 맞다. 그런데 그거 알아?


탈락 덕(?)에 보물 같은 말들을 참 많이 들었어. 주변 분들이 나를 위로해주신다고 각자의 실패담들을 들려주셨거든. 진솔한 이야기들은 참 힘이 있어. 그 이야기들 덕분에,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는지도 몰라.


나는 솔직히, 왜 사냐고 묻는다면

사람 때문인 것 같아.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하고, 사람들 덕에 울고 웃어. 그게 사는 거니까..


아무튼,

감사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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