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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름 Mar 02. 2022

삼촌에게(1)

그게 왜 고통인 것인지

 죽는다는 건 마침내 사물이 되는 기막힌 일
그게 왜 고통인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한 강, 「심장이라는 사물 2」,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 지성사, 2013



  삼촌은 내가 아주 어릴 때 함께 살던 가족이었다. 나의 아빠가 무심하던 시절에 아빠를 대신해준 그늘이었다. 유치원 운동회에서 아빠를 대신해 내 손을 잡고 뛰던 삼촌의 머리는 아주 밝은 레몬색이었다. 그때의 삼촌의 젊은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뒤꽁지를 길러 땋고 다니던 삼촌의 레몬색 머리는 지금도 선명하다. 그때 삼촌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였다. 내가 더 어리던 시절에는 눈꺼풀을 뒤집고 짖궂게 나를 잡으러 쫒아다녔다. 부모님이 유치원에 아이들을 데리러 와야했던 날에도 삼촌은 엄마 아빠와 함께 있었다. 소풍에서 돌아와 하나 둘 먼저 도착한 부모님과 집에 가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님이 오지 않을까봐 눈물을 꾹꾹 참았던 내가 마지막으로 나의 부모님이 도착했을때 서러움에 왕왕 울었던 날에도 나를 달래준다며 삼촌은 치킨을 시켰다. 그때 방바닥에 펼쳐둔 치킨 상자와 방의 풍경이 아직도 기억난다.


 삼촌은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흘러 가족과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 좋은 곳에 산다며 자랑을 하던 삼촌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놀러오면 잠도 재워주고 구경도 시켜준다며 언제든지 오라했다. 그 얼굴엔 꽤 자랑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조카에게 멋진 곳에 편히 올 수 있도록 방 한 켠을 내어줄 수 있다는 뿌듯함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도 사람들과 제주도 이야기가 나오면 나의 삼촌이 제주도에 산다고 자주 자랑을 했다. 하지만 정작 삼촌을 보러 제주도를 가본 적은 없었다. 결혼하기 전 대학 동기들과 마지막으로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도 삼촌은 일을 하고 있을거라 생각해 공항에서 잠깐 숙모만 만나고 돌아왔다.


 그리고 몇 달 뒤 나의 결혼식에서 신부대기실에 들어선 삼촌을 만났다. 나는 외할아버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 젊은, 이상한 기시감에 다시 들여다본 사람은 외할아버지를 꼭 닮은, 너무 많은 세월을 지난 삼촌이었다. 나의 결혼식에서 삼촌은 아주 많이 울었다. 숙모도 이모도 내 옆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삼촌은 찍지 못했다. 신부대기실 구석에 숨어 계속 우느라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눈을 가리고 울던 삼촌의 까맣게 탄 쭈글쭈글한 손이 자꾸 생각난다. 식이 끝나고 감사인사를 하던 결혼식장 주차장에서 다시 만난 삼촌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울면서도 왜 제주도 와놓고 왜 내게 연락하지 않았냐며 서운하다 말했다. 삼촌을 살짝 안으며 죄송하다고 연락 잘 드리겠다던 나의 대답이 기억난다. 말도 다 잇지 못하고 울던 삼촌을 보면서 삼촌이 이렇게 여린 사람이었나 신기했다. 엄마도 아빠도 이렇게까지 울지 않는데 삼촌이 왜 이렇게까지 우는지 조금 이해가 안 됐다. 그렇지만 내가 삼촌에게 그렇게 큰 존재였다는 사실이  좋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 삼촌이 그 날 저녁에도 동생 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고, 동생이 말해줬다. 늙어서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냐며 누나와 아내의 놀림 섞인 타박을 들으면서도 그렇게 울었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들으며 삼촌에게 내 결혼이 그렇게까지 눈물이 나는 일인지 조금 신기했다.


 삼촌은 간다는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버렸다. 결혼식이 끝나고 감사인사를 전하는 저녁에 너무 많은 객들에게 연락을 전하느라 이해해줄거라 지레 짐작하고 연락을 미뤄둔 덕분에 삼촌께는 꼭 연락을 드리겠다는 약속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외가의 어른들이 종종 말한다. "걔가 그렇게 갈 줄 알고 너 결혼식에서 그렇게 울었나보다." 정말 그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려워진 형편에 혼자 제주도가 아닌 객지로 나와 일을 알아보려 여관방에 있던 삼촌이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버릴 때에, 외로웠을까. 두려웠을까. 서글펐을까. 그런 것들을 생각해본다. 다음날 누나에게 간다며 이모와 통화를 하며 "누나, 누나." 울었다는 삼촌은 빨래를 돌리고 돌아간 그 방에서 다시 스스로 나올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일을 위해 빨래를 돌렸을 삼촌이 그렇게 떠날 때에 어땠을지를 가늠해본다. 그 근처도 가늠해보지 못할테지만 나로서는 깊은 고독의 깊이를 체감한다. 아무도 잡을 손이 없이 떠난 삼촌에게 무정했던 조카는 여전히 조금도 희석되지 않은 슬픔을 껴안고 3년을 지나고 있다. 당신이 작은 항아리가 되어버렸을 때, 죽음이 왜 고통인 것인지 그제서야 진정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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