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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훈 Nov 19. 2020

찐 만두와 파도타기

어쩐지 맛이 있더라니.

 왠지 오늘은 일을 좀 덜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괜히 퇴근 후 시간을 더 내어 이것저것 일거리들을 찾아 정리한다. 오후 8시가 조금 지나서야 가족들에게 집에 간다는 연락을 하고는 퇴근을 위해 긴장을 풀고 안경을 벗는다. 빨간 엑스를 눌러 네모난 노동 거리를 모두 소멸시키며 오늘 하루 열일한 컴퓨터에게 휴식을 주고 있는데, 대표님과 원진 씨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갑작스레 시작된 토론의 파도에 휩쓸린 나는 오늘 막 새로 출시된 커피에 관하여 몇 마디 말을 겨우 내뱉는다. 두 분이 사무실에 잠깐 들린 것이기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시간을 온몸 가득히 만끽하기로 한다. 이른바 찐 커피 고수들의 대화에 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작은 영광이자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내가 파도를 탄 게 아닌, 큰 파도의 여파로 생긴 잔물결이 둥둥 떠다니던 날 밀어낸 것이지만, 나는 파도를 탔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엄마는 퇴근하겠다는 막내 아들내미의 말을 듣고는 도착시간에 맞춰 만두를 찐다. 예상 시간보다 늦어지는 귀가 시간에 어디쯤 왔는지 묻는 연락이 왔었지만, 커피 이야기로 꽃을 피우느라 연락을 받지 못한 나는 다시 연락해 이제야 출발한다고 알린다. 왠지 시원하게 나의 니트를 스쳐 지나가는 비 온 뒤의 쌀쌀한 합정동의 밤공기를 지나 띠띠띠띠 소리를 내며 온 집에 내가 왔음을 알린다. 씻고 옷 갈아입기가 무섭게, 엄마는 온종일 생사고락의 전쟁통에서 살아 돌아온 귀한 이씨 가문의 막내 아들내미가 저녁 못 먹고 굶어 죽지는 않을까 노심초사라도 하는 듯 미리 쪄 둔 만두를 재빨리 내어 온다. 예상보다 늦어진 내 귀가를 기다리던 찐 만두는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옆에 놓인 간장에 찍어 먹지 않아도 달달하니 맛이 있다. 하나뿐인 아들이 장가 회장의 아들을 때린 대가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박새로이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에게 '술이 달다면 오늘 하루가 인상적이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뭇 술꾼들의 밤을 달달하게 했는데, 지금 내 앞의 찐 만두가 참 달달한 것 보니 나의 오늘 하루는 참 배고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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