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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현 Mar 10. 2023

Ep.9 │ 양송이타파스에 빠지다

산티아고 핑계 삼아 떠난 유럽여행_로그로뇨

최근 들어 기침이 잦아져 새벽에 일어나 약을 먹고 다시 잠에 들었다. 날이 갈수록 기운이 떨어지는 것 같아 몸 관리에 신경을 더 써야 할 것 같다.


오늘은 3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창문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비를 입기에는 애매하다고 생각이 들어 배낭을 메고 문 앞에 서는 순간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순례길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나는 우비를 꺼내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이번 바르셀로나 데카트론에서 우비를 구매했는데 크기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모자만 쓰면 내 눈앞에 위치해 시야를 자꾸 가려 걷는데 불편했다.


다음 마을 산솔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치니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조금씩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했다. 다음 마을 토레스와는 언덕을 하나 넘으면 도착한다. 토레스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출발했다. 한국인 형님들도 어제 머물렀던 로스 아르코스에 숙소가 없어 토레스까지 와서 숙소를 겨우 잡았다고 한다. 이제부터 다음 날 자게 되는 숙소예약은 필수인 듯하다.

로그로뇨로 가는 길도 역시 이파리들만 무성한 포도밭, 추수를 끝낸 밀밭들의 모습이 끝없이 이어진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이런 풍경들이 지겹지 않다.


그나저나 혼자 걷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는 앞 뒤로 순례자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신나게 노래를 불러보았다. 노래를 목청껏 부르면서 걷다 보면 더 빨리 걷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골목길이 인상 깊은 비아나 마을에 도착했다. 비교적 작은 마을이었지만 골목길에 어우러져있는 여러 개의

바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활기가 도는 마을이었다.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맥주를 한잔할까 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새끼 고양이 3마리 때문에 바로 걸음을 멈추었다. 스페인 마을에는 유독 고양이들이 많다. 특히 사람 때가 묻어서인지 다가와서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들이 꽤 많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한테 애교를 부리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간택당했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마을 끝자락에 도착하니 학교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난 잠시 의자에 앉아 학교 쪽으로 바라보고 앉아서 그 순간에

집중했던 것 같다.

길 옆으로 세워져 있는 현대자동차 광고판을 보니 로그로뇨에 다 왔음이 느껴진다. 도시 입구부터 시작되는 메타스퀘어 길이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을 해주는 듯하다. 오늘 도착한 로그로뇨는 프랑스길에서 만나는 두 번째 대도시이자 양송이타파스로 유명한 곳이다.


어제 알베르게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어제 미리 호스텔로 예약을 해두었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30분. 3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했으나 혹시 얼리체크인이 가능할까 싶어 호스텔로 가보았지만 굳게 닫혀있는 프런트를 확인한 후 로그로뇨 대성당 앞에 있는 바에 앉아 맥주를 시켰다.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지만 평일 오후 바에 앉아 사람들 사이에서 맥주를 먹고 있으니 이게 행복임을 느낀다. 곧이어 다른 분들도 마을에 도착했단 소식을 듣고 숙소 앞으로 향했다. 그런데 호스텔에서 오늘 세탁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분들과 함께 공립알베르게에서 자기로 했다.  


공립알베르게가 문을 열기까지 숙소 앞 놀이터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져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 건물에서 살고 계셨던 알베르게 직원분이 그 모습을 보고 먼저 문을 열어주겠다며 내려와 주셨다.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점점 좋아진다.


나는 가방만 두고 밀려있던 빨래를 하러 1층으로 내려왔다. 공립알베르게에는 대부분 손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더불어 세탁기와 건조기가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한번 돌릴 때마다 건조기까지 한다고 하면 8~10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원화로 12,000~14,000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식비로 예산을 아끼고 있어 3~4일에 한 번씩 돌리면 딱 맞을 것 같다.


나는 빨래를 돌려놓고 숙소 밖으로 나와 마을 한 바퀴를 돌았다. 로그로뇨는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성당 주변만 간단히 둘러보기로 했다. 아기자기한 서점들과 기념품점들이 눈에 뜨인다.


나는 아시아마켓에 들려 안성탕면과 불닭볶음면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들어와 YJ누나와 함께 로그로뇨 맛집을 검색하보니 온통 타파스 가게로 가득했다. 마침 SY형님이 유명한 타파스 집이 있다며 각자 저녁을 먹고 타파스 가게에서 모이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Bar Angel] 타파스 가게에 도착했다. 난 왜 이런 음식을 이때까지 모르고 살았는가....

기름에 절인 버섯은 삼겹살이 생각날 만큼 맛이 너무 좋았다. 왜 이곳이 양송이타파스로 유명한지 단번에 알 것 같은 맛이었다. 이 타파스 때문에 로그로뇨에서 연박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게 아닐까 싶다.


타파스와 함께 와인 3잔을 연거푸 마셨다. 그리고 오늘은 서로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유독 많이 나누었던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는 밤인 듯하다.


타파스 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뜨거워졌지만 10시에 문이 닫혀버리는 알베르게 때문에 아쉽지만 우리는 숙소에 돌아와야 했다. '그래 내일도 열심히 걸어야 하니... 참아보자'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맛있었다. 양송이 타파스.... 또 먹고 싶다.


Buen camino

좋은 길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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