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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on현 Feb 10. 2023

Ep.3 │ 말로 표현이 안되네  

산티아고 핑계 삼아 떠난 유럽여행_론세스바예스(피레네 산맥)

떠나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아침 5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나도 씻기 위해 샤워실로 향했다. 

알베르게는 보통 개인에게 수건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부터 극세사 수건을 챙겨 왔다. 

생각보다 흡수력이 좋아 만족스러웠다. 아직 1층에 계신 할아버님이 주무고 계신 터라 널브러져 있는 짐을 챙겨 부엌으로 나왔다. 아직 창문 밖은 어두웠지만 벌써 떠날 준비를 다하고 아침을 드시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다. 참 이상한 게 왜 짐을 쌀 때마다 짐들의 위치는 매일매일 바뀌는 걸까 어제는 잘 들어갔던 짐이 오늘은 겨우겨우 들어간다. 나만의 짐 싸는 방법을 연습해야겠다.  


아침은 어제 사둔 빵을 냉장고에서 꺼낸 뒤 숙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어제 잠시 인사를 나눈 한국인 분들과 출발 전에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나갈 준비를 마쳤다. 아직 7시도 안 된 시간이지만 순례길 첫날인 만큼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숙소밖을 나섰다. 날씨가 생각보다 더웠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온도 자체가 높아 얇은 긴팔만 입고 밖을 나섰다. (이때까지만 뒤에 마주할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숙소에서 만난 분들과 다음 숙소에서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가장 먼저 출발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산티아고까지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게 발걸음을 너무 가볍게 했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언덕이 나왔고 아직 해가 뜨질 않아 주변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지만 플래시 하나 키고 중간마다 표시되어 있는 순례길 표시를 따라 신나게 걸었다. 10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머리에 오늘 먹을 점심을 숙소 냉장고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하루정도 점심은 포기할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그런데 왜일까 무언가 찜찜한 마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더 걷고 난 뒤에서야 찜찜했던 이유를 알았다.  


숙소 옷걸이에 바람막이를 두고 온 것이다. 

나는 "하...."  큰 한숨을 내쉬고 5분 정도를 그 자리에 멈춰서 방법에 대해서 생각했다. 

'과감하게 바람막이를 포기할까?' 아니다. 비싸기도 하고 산티아고 오려고 마음먹고 산 바람막이인데...

'아니면 숙소에서 전화해서 아직 출발하지 않은 한국인분이 있으면 부탁드릴까?' 

많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걸어온 거리를 보니 3KM 정도 걸어온 듯 했다. '그래 지금 생각난 게 어디야. 다시 갔다 오자. 그게 제일 빠르겠다.'는 생각으로 빠르게 반대편으로 걸음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뒤에 오고 계시던 한국인 분들이 다시 왜 돌아가냐며 무슨 일 있냐며 한 분 한 분 걱정해 주셨다. 바람막이 때문에 돌아가고 있다며  애써 웃으면서 대답해 드리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그렇게 다시 숙소에 도착했는데 걸려있는 바람막이가 왠지 얄미워 보였다. 겸사겸사 냉장고에 넣어둔 점심도 챙기고 벌써 비워버린 물 한 통을 한가득 채운 뒤 다시 출발했다. 순탄한 산티아고 순례길이 되기 위해 액땜했다 생각했다.

아침 8시 정도가 되니 해가 뜨면서 양옆으로 어둠에 갇혀있었던 드넓은 초원과 농장이 앞에 나타났다. 

아침부터 왔다 갔다 고생한 보상을 한 번에 받는 느낌이었다. 걷다가 사진 찍고를 반복하면서 걸었던 것 같다. 


그렇게 걷다 보니 본격적으로 산길에 들어섰다. 걷고 되는 피레네 산맥은 고도 1500M가 넘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그래도 체육대학을 졸업했고 평소에 운동도 적지 않게 했던 터라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난 얼마 가지 않아 겸손해져야만 했다. 

12kg이 넘는 배낭과 함께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체력이 금방 떨어졌다. 심지어 물도 벌써 한 병을 다 먹은 상태... 아직 피레네 산맥의 반도 도착하지 않았는데 속으로 큰일 났다 생각했다. 가방도 가방이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역풍으로 무섭게 불어오는 바람이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맑은 하늘풍경에 빠져 조금만 정신 안 차리면 몸이 휘청거릴 만큼 센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왔다. 


걷는 중간에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여자분과 잠시 만나서 같이 휴식을 취했다. "어떻게 혼자 순례길을 오실 생각을 하셨어요?"라는 나의 질문에 이 시기가 아니면 산티아고에 못 올 것 같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너무 공감 가는 말이었다. 그렇게 조금만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다른 순례자분들도 같이 오셔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몸은 너무 힘들었지만 정말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구나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저나 아침에 숙소왕복으로 체력을 소비한 게 컸던 탓일까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빠르게 찾아와서 지속적으로 휴식을 취했다. 배낭을 내려두고 다리를 뻗고 누워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정말 움직이기 싫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난 계속해서 길을 떠나야 했다. 

피레네 산맥 중간에는 [오리손]이라고 불리는 산장이 나온다. 원래 성수기에는 알베르게도 운영하고 바(Bar)도 운영하는 곳이지만 비수기라 그런지 공사 중이어서 물도 나오지 못하는 상태였다. 결국엔 조금조금씩 목만 축이다가 결국 1000M 고지에 도착했을 때 물이 다 떨어져 버렸다. 

남은 희망이라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푸드트럭뿐. 내가 살면서 이렇게 빠르게 입이 마른 적이 있었나 싶다. 

입안에서 침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만큼 갈증이 심했다. 걸으면서 만난 순례자분들에게 물을 부탁하고 싶었으나 내가 힘든 만큼 그분들도 힘들 게 당연했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오르막을 계속해서 오르다가 위쪽에서 사람들이 다 같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푸드트럭인가 싶어 힘내서 휴식터에 도착을 했다. 하지만 푸드트럭은 보이질 않았는데 평소 이곳이 푸드트럭이 있는 장소라고 한다. 허탈한 웃음만 나오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챙겨 온 물티슈 생각이 났다. 물티슈로 입을 닦고 물고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 싶었는데 정말 효과가 있었다. 계속해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쉽게 수분이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정말 큰 도움이 된 듯하다. 


드디어 기나긴 언덕이 끝나고 평지가 나오면서 물에 젖은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앞에 사람들이 앉아서 쉬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물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드디어 살았구나는 생각과 함께 쫄쫄쫄 나오는 물을 받아 들이켰다.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거의 500ml 물통에 물을 4번 가득 받아서 먹을 만큼 물이 그리웠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곳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국경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를 만큼 물 먹기 바빴던 것이다. 같이 있었던 영국 남자분이 천천히 먹으라며 웃으면서 말을 걸어주었다. 그 분과 스몰토크를 나누고 물통에 가득 채운 다음 다시 출발했다. 물 하나에 이렇게 든든하고 걷는 게 다시 즐거워졌다. 


조금 가다 보니 낙엽으로 가득 찬 길이 나왔는데 소방서에서 나와 진압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화재가 난 듯했다. (며칠뒤 화재가 다시 발생해 내가 걸었던 나폴레옹길은 며칠간 통제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평지를 조금 더 걷다 보니 한번 더 보이는 오르막길... 아까 휴식하면서 이야기 나눈 영국 남자분께서 오르막길을 한번 더 넘으면 내리막길이라고 했으니 마지막이겠지 생각하면서 열심히 오르막을 걸었다. 가던 길에 낙엽길에 만난 소방관 한 분이 차로 이동하다가 대피소에 잠시 쉬고 있던 나를 보고 걱정이 되셨는지 괜찮냐고 물어보셔서 문제없다며 엄지를 크게 위로 올려주었다. 


그렇게 또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아버지뻘로 보이는 한국인 한 분이 계셨는데 내 배낭을 보시더니 이렇게 무거우면 완주 못한다며 걱정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드디어 저 멀리 도착지인 [론세스바예스]가 보인다. 이제 앞에 있는 내리막길만 걸어가면 된다. 

정상에서 서로 사진 한 장씩 찍은 다음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왔다. 먼저 내려가신 아저씨를 지도삼아 열심히 뒤따라 걸었다. 하지만 역시 내리막길도 만만치 않다. 굽이굽이 내려가야 하는 길이라 길이가 상당했다. 그래도 마을과 가까워져서 그런지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한 말들과 함께 걸으니 내려갈 맛이 났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더 내려와 조그마한 냇가를 따라 걸으니 론세스바예스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예스는 알베르게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거의 모든 순례자들이 이곳으로 모이지만 100명이 넘는 순례자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시설이 좋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직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웃으면서 환영해 주셨다. 가방을 벗어두고 간단한 체크인을 마친 뒤 저녁, 내일 아침까지 먹을 수 있는 패키지로 결제를 하고 배정받은 침대에 짐을 풀었다. 등 뒤에 가방이 없으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바로 따뜻한 물에 씻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정말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하루이다. 씻고 나오니 내 침대 바로 맞은편에 약수터에서 만난 영국 남자분이 계셨다. 뭔가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분은 나에게 조금 있다가 옆에 있는 성당에 같이 가자며 하셨지만 나는 종교가 없다며 여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며 정중하게 거절한 대신에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나는 편안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뒤에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선물가게에 들렀다. 아무래도 순례길과 관련된 기념품을 많이 팔고 있었고, 순례길 표시인 노란색 화살표 끈을 하나를 결제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사는 한 테이블에 9명이 둘러앉아 다 같이 식사를 했다. 

스페인은 보편적으로 메뉴델디아(Menu del dia)를 많이 먹는다고 한다. 메뉴델디아는 애피타이저부터 메인메뉴, 디저트에 빵과 음료를 더해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메뉴인데 가성비가 너무 좋은 듯하다. 

오늘의 메뉴델디아는 스페인식 감자수프와 파스타, 메인 메뉴는 치킨을 먹은 뒤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마무리했다. 정말 젠틀했던 영국 남자분이 하나하나 요리를 나누어주시고, 저녁식사 내내 재미있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띄우던 아르헨티나 남자분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신 한국 여자분이 옆에서 통역도 해주시면서 나도 같이 어울릴 수 있게 도와주셨다. 유학 중인 한국 여자분은 체험 삼아 이곳에 온 터라 내일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다며 옆에 같이 있던 아르헨티나 남자분이 너무 사람이 좋다며 소개해주셨다.   

 

첫날부터 좋은 분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보면 살면서 한 번도 만날 수 없는 분들을 같은 날에 만나 함께 저녁을 먹는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한 일인 듯하다. 

아직은 만날 때마다 안부를 묻고 눈인사를 하는 이곳의 문화가 익숙하지는 않지만 나름 내 적성과도 잘 맞아서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된다. 그렇게 흥미로웠던 저녁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 자판기에 물 두 개를 뽑아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오늘부로 굳게 다짐한 일이 있다. '걷는 동안 절대로 물, 음료수 먹는 거에 돈 아끼지 말 것'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듯하다. 

굳게 다짐을 하고 침대에 누워 발바닥 마사지를 조금 해준 다음 나는 잠에 들었다. 


Buen camino

좋은 길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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