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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Aug 31. 2023

기억

장자연으로 본 

발행했다면 아마 이게 첫 글. 앞에 쓴 글의 결을 따라 이글도 올리기로.  

지난 2019년 5월 20일에 쓴 글인데,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고 장자연 씨 사건 재조사 결과를 발표한 날이었다. 검찰과 경찰은 언론권력 앞에서 진실을 덮었고, 과거사위는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아 진실을 확인할 기회를 놓쳤다."는 말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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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주요 검색어로 하루 종일 떠있는 장자연 앞에서 내 기억은 속수무책으로 소환됐다. 10년 전의 장자연에서 우린 한 걸음도 못 나갔다. 아직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자각이 날 아프게 한다.

(앞으로 글은 못쓸 듯하다.  우둔한 머리로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단어 하나 잡아내기 어려웠다. 날이 선 글자들이 만들어내는 단호함 앞에서 난 늘 우물쭈물했다. 언어는 어지러웠고, 길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겨우 예전에 쓴 글을 불러볼 뿐이다.)    


[유레카] 장자연/2011-03-07

니체의 말대로 과연 망각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일까? 우린 그 선물을 받지 못한 이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이가 있다. 깨알같이 적어둔 일기장처럼 그가 살아온 모든 날의 일상이 그의 머릿속에 박혀 있다. 7년 전 6월 5일에 뭘 했는지를 물으면 오후에 비가 그쳐 장 보러 갔는데 마침 돈이 모자라 감자를 못 샀다고 대답한다. 2006년 한 과학잡지에 논문이 실리면서 알려진 질 프라이스라는 실제 여성의 이야기다.(<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2009년) 그가 얼마나 생을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는 남편을 잃은 고통으로 매일 아침을 맞는다. 그가 살아온 날들의 기쁨도, 몇 년의 시간도 소용이 없다. 극심한 고통은 그것 하나로도 족하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기억의 자멸을 유도하는 망각장치를 그래서 따로 설계도에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망각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처럼 나쁜 기억만 골라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감신경 억제제 같은 약으로 일부 아픈 기억을 지우는 실험(미국 하버드대)도 있었고, 단백질 효소를 이용해 쥐의 특정 기억만 골라 지우는 ‘선택적 기억 제거’ 방식(미국 조지아대 뇌행동연구소)도 등장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코드를 컴퓨터 파일처럼 척척 만지는 날이 올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직 그것은 신의 관할인 듯하다.

장자연 씨는 고통과 수치의 기억을 지울 방법을 찾지 못하고 끝내 제 몸을 지웠다. 정작 ‘망각의 장치’를 찾은 것은 우리다. 그의 죽음을 보고 분노를 토했던 우린 슬그머니 잊어버렸다. 그가 기억의 저편에서 2년 만에 다시 살아왔지만, 돈과 권력의 세상은 여전히 완강해 보인다. 죽어서도 고통을 풀지 못하는 세상, 너무 슬프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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