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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phan Seo Jun 30. 2024

서울대 정시 논술에서 장난친 이야기

인생 첫 무모한 스윙으로 홈런을 치다

살면서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행동을 한 적이 얼마나 있나요? 

다양성보다는 천편일률적인 학업 커리큘럼을 강요하던 한국 문화 속에서 저는 그런 과감함을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태생적으로도 겁이 많던 성격이라 더더욱 그러했죠. 


그럼에도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이상하리만치 무모한 행동들을 하던 때가 더러 있더군요. 그리고 그 행동들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줬습니다. 이제 와서 보면 분명 어느 정도 '합리'를 기반에 둔 좋은 의사결정처럼 해석이 되긴 합니다만, 당시에는 그냥 '이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겠다.' 싶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취했던 행동들이긴 합니다. 

가끔은 안타가 아니라 홈런이 필요하다

경험이 쌓여갈수록 식견이 넓고 깊어져 내게 맞는 올바른 의사결정은 하기 쉬워졌지만, 동시에 잃을 것들이 많아져 과감한 선택에 대한 망설임은 커졌습니다. 때문에 의사결정의 타율은 높아졌지만 단타에 그치곤 하는데요, 그 점이 요즘 들어 퍽 아쉽습니다. 마냥 '열심히' '성실히'만 임한다고 원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얻을 수는 없더군요. 안타와 볼넷도 착실히 쌓아가야 하지만, 때로는 더 빠르고 편히 가기 위해 홈런과 같은 큰 한방도 필요합니다. 앞서 말했듯 실제로 제 인생의 큰 점프를 만들어줬던 것도 몇 안되던 저의 과감한 행동들이었습니다. 


약해져 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일전의 무모했던 행동들을 가벼운 글로 정리하며 상기하려 합니다.

첫 번째 글로, 저의 서울대 합격을 이끌어줬던 정시 논술 시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때는 2010년 1월 서울대 정시 논술 날, 이른 아침 16동 101호에 들어선 저는 무척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대학 입시 전형 중 가장 마지막으로 진행되던 것이 서울대 정시 논술이었던 만큼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글쓰기에 자신도 없었던 데다가 정시 논술을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 사실상 하루 종일 치러지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는 매우 각성되어 있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1번 문제는 무난했습니다. 보통 통자로 2,000 자, 3,000 자씩 써야 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데요 1번 문제는 800자씩 새끼 문제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게다가 보통의 논술 문제들은 나름의 '정답'이 있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번 1번 문제는 별도의 정답은 없어 보였고 제 생각을 논리적으로만 잘 정리하면 되는 문제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무탈히 1번 문제를 적어 제출합니다. 


2번 문제는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이 지문으로 나왔습니다. 이 또한 대체적으로 쉽게 느껴졌지만, 뭔가 '정답'의 방향이 있는 느낌의 문제였습니다. 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 어느 방향으로 글을 적어내느냐에 따라 점수가 크게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었죠. 하여 그 방향을 정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를 읽고 또 읽으며, 출제자의 출제 의도가 무엇일지 톺아봤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지못해 어느 한 방향을 정하여 글을 빠르게 적어냈는데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쓴 만큼 영 개운하질 못했습니다. '아 그냥 정답 여부 생각 말고 내 의견 자체에 집중해서 써볼걸!' 뒤늦게 껄무새가 등장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제 3번 문제가 제 합격 여부를 좌우할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1번 문제는 평타, 2번 문제는 절었다고 판단했으니 3번 문제에서 승부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3번 문제도 평이했다는 것입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 - 정확한 인물들이 떠오르진 않지만 대략 정약용, 박지원, 홍대용 등의 '노비제'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 담긴 지문들이였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대략 '자신이 조선 후기 실학자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당시 노비제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설파하시오'라는 문제였습니다. 여러 요구 조건들을 담아서 작성하면 무난하게 1,600 자 내외로 작성이 끝날 것으로 보였습니다만 이 3번 문제에서 그냥 평범하게 썼다가는 떨어질 것 같아 지문과 질문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아 혹시 질문 속에 함정 같은 건 없을까?' 
'조선 후기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인 특성을 잔뜩 담아내야 하는 걸까?...' 


여기서 제 눈에 갑자기 이 부분이 확 들어오더군요. 

'자신이 조선 후기 실학자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아 현대인의 관점이 아니라, 조선 후기 실학자의 관점이구나! 

이걸 어떻게 표현할지 잠깐 생각하고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 지금부터 요즘 노비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보겠네. 자네들은..." 

실제로 제가 그들의 관점에서 의견을 서술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만, 일단 말투를 조선시대 말투로 고정하여 글을 썼던 것이 당시 저의 전략이었습니다. 그 시절 말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사극 드라마/영화에서 듣던 말투로 적었던 것이죠. 마지막 문장도 기억이 납니다. 


"이상으로 내 이야기를 마치겠네. 다들 들어줘서 고맙소."



뭔가에 홀린 듯 일필휘지로 쉼 없이 적어 내리고 제출을 하고 나자 그제야 큰 실수를 한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이어진 논술 학원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큰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야 너는 평타만 쳐도 합격할 놈이 왜 똥을 싸지르고 왔냐!"


아이고, 내가 무리수를 뒀구나 - 그것도 정말 중요한 시험에서 - 

하지만 시험 시간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질 못했습니다. 그 순간에는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강했던 것이죠.


어찌 됐든 저는 합격을 했습니다. 

세 번째 문항을 특이하게 작성하였음에도 합격이 되었다는 것은, 채점하시던 교수님께서도 적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는 무모한 행동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생 첫 무모한 행동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으니까요. 


그렇게 매일 안타만 성실히 때려내던 제가, 제 인생의 첫 홈런을 기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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