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이면에 존재하는 마찰 지점
아하 모먼트는 신규 유저가 처음으로 제품의 가치를 느낀 순간을 의미하는데요, 이것이 잔존율에 큰 영향을 주는 만큼 아하 모먼트를 얼마나 빠른 시점에 잘 느낄 수 있게 만드느냐가 신규 유저 온보딩 여정의 핵심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지난 분기 저희 팀은 저희 온보딩 여정에 아하 모먼트가 아닌 아 모먼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 유저 관찰 카메라를 진행해 본 결과, 아하 모먼트 발굴 이전에 아 모먼트 제거가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죠.
아 모먼트란, 신규 유저가 제품을 사용하는 와중에 '아하'의 감탄이 아니라 '아'의 탄식을 내는 막힘 모먼트를 의미합니다. 뭔가 매끄럽지 못하고 마찰이 발생했다는 건데요, 흔히 정보량이 과하게 쏟아져 인지 부하가 발생하거나, 정보 구조 및 위계가 일관되지 않아 인지 부조화가 벌어지거나 내지는 불친절한 UI/UX로 짜증 및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는 모먼트가 바로 그 예입니다. 물론 일부러 그러한 모먼트를 만들었을 리 만무합니다. 감동과 감탄을 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의도치 않게 짜증과 탄식으로 이어진 케이스들이죠. 여러분의 제품들은 현재 어떨까요. 이는 여러분들도 쉽게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저희 팀 제이슨(Head of Engineering)은 업계 내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그 지인 분께 알라미 제품을 한번 설치해서 써봐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동의 하에 그 모든 여정을 촬영하여 팀에 공유해 주었습니다. 촬영에 담긴 내용은 제법 창피했습니다. 막히면 안 되는 구간에서 계속해서 막히더군요. 좌우 스와이프 동작이 제공되지 않는 화면에서 수차례 스와이프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셨고, 온보딩이 다 끝난 이후에는 지금 제대로 끝난 게 맞는지 판단이 되질 않아 불필요한 번뇌와 불안감을 느끼셨습니다. IT업에 종사하고 계신 분도 저희의 여정을 이해를 제대로 못했는데, 일반 유저분들은 얼마나 어려울까요.
다소 충격적인 결과에 이 관찰 카메라 액티비티는 한동안 릴레이처럼 이어졌는데요, 디테일한 부분은 조금씩 달랐지만 전반적으로 촬영된 내용이 일관되었습니다. 우리 앱이 어떤 가치를 주는 앱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앱인지 잘 인지하지 못한 채로 온보딩이 끝났다는 점, 도중에 뜨는 구매화면으로 인해 유료 앱으로 오해한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었죠.
어쩌다 우리의 노력이 아하 모먼트가 아니라 아 모먼트로 이어졌던 걸까요.
지나치게 숫자를 믿었던 것이 화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숫자는 유저가 얼마나 이탈했는지는 알려주지만 왜 이탈했는지까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유저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려주지만, 왜 남았는지까지는 알려주지 않았고요.
구매화면이 얼마나 일찍 노출되는지에 따라 온보딩 완수율에 차이는 없었지만, 완수하지 않고 앱을 떠난 이유는 달랐을 수 있습니다. '살펴보니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였을 수도 있고 '구매화면이 뜨는 걸 보니 유료 앱이구나 싶어서'였을 수도 있죠. 또 다음 날 앱을 재방문하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들, 유저들이 재방문을 더 하게 된 이유는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한번 써 보고 나니 더 써보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알람이 맞춰져 있어서'였을 수도 있죠.
저희 구매화면 엔트리 포인트 중에 유독 이상하게 결제 비중이 높은 구매 화면 엔트리 포인트가 있었는데요, 광고 지면에 광고가 노출되기 전까지 1-2초 정도 Placeholder 로써 자리를 차지해 주는 엔트리 포인트입니다. 특이한 건 환불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은 엔트리 포인트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알고 보니 기상 직후 비몽사몽 상태에서 오클릭으로 구매화면이 노출되고 또 오클릭으로 결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건데요 - 이 또한 유저들의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부분이었죠.
이렇듯 당장의 데이터 상에서는 차이가 없거나 또는 더 좋은 숫자를 보일 수 있어도 질적으로 좋은 의미의 숫자는 아닐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속아서', '어쩔 수 없어서', '실수로' 등 아주 잠깐의 여정에서만 좋아 보이는 숫자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흔히들 프랑켄슈타인 제품이라고들 표현하죠. 제품을 거시적으로 보지 않고 일부 영역 단위로 최적화를 하다 보면 부분 부분은 최적일 수도 있지만 이를 합쳐 놓았을 때 이상한 제품이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쉽게 말해 못 생겨집니다. 애자일이라는 미명 하에 부분 단위의 그로스를 오랜 시간 거쳐오다 보니 저희 제품도 그러한 부분 최적화의 오류에 빠져버렸던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여정인 신규 유저의 온보딩 여정과, 알람 설정 및 해제의 여정을 다시금 돌아봤습니다. 그간의 실험들의 위너들이 합쳐져 적용되어 있는 모습은 도무지 위너로 보이지 않더군요. 부분 최적화로 이상하게 구성된 여정들을 찾아 문제를 정의하고 하나씩 해소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정성적인 영역이기에 목표로 잡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아 모먼트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오프라인 만남에서 친구들에게 내일의 기상을 위해 알라미를 설치해 보게끔 하고, 그 과정을 관찰해 보았을 때 막힘이 없으면 성공입니다. '10명에게 시켰을 때 9명이 막힘이 없으면 성공' 등 억지로 정량화도 해볼 수 있겠습니다. 또는 이해도를 측정하는 문항지를 작성하여 특정 점수를 넘기면 성공이라고 해볼 수도 있겠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 이면에 존재하는 유저의 실제 사용성(유즈 케이스)에 집착하겠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아 모먼트를 없애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유저에게 아하 모먼트를 빠르게 경험시킬 수 있게 만드는 여러 전략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말 관찰 카메라에서는 부디 탄식이 아닌 감탄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