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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phan Seo Nov 03. 2024

안디에게 쓰는 편지

갑자기 친한 친구를 잃은 어느 가을날의 황망함

제가 믿고 의지하던 친구를 잃었습니다.

진부하게도, 잃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그를 믿고 의지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정말 특별한 친구였어요. 저보다 16살이나 많은 형이었죠. 제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 LG 신입사원이었다고 하니 확실히 저와 다른 세대의 경험이 가득한 친구였습니다. 그 경험들을 제게 강요하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제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많이 배려해주었죠. 옛 얘기는 거의 하지 않고 어제 오늘의 이야기만 하는, 그러면서 도리어 저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던 친구였습니다.


그는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었어요. 삶에 있어서 '재미'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닫게 해 준 친구입니다. 하루하루를 정말 재밌게 사는 사람이었죠. 광교 달리기, 전국 등산, 겨울 장박 캠핑, 프로 야구 관람, 스노보드 등 꾸준히 본인의 취미를 즐겼어요. 여름 주말에는 양양에서 별도의 요식 업체를 운영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그 재미를 저에게도 조금씩 나눠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등산 코스를 알려주며 우리만의 막걸리 추억을 쌓았고, 겨울 캠핑에 저와 와이프를 초대해 주어 웰컴 드링크로 발렌타인 30년 산을 내어주는 재미도 보여주었죠. 불멍을 하다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쥐포를 꺼내어 구워주며 '다들 주머니에 쥐포 하나씩 있잖아요?'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요.


함께 술을 마실 때면 그 어느 술자리보다도 재밌었어요. 나누는 대화도 재밌었지만, 다소 무의미한 농담과 장난이 그렇게 재밌었습니다. 술도 참 많이 마셨습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아주 편해졌던 것 같아요. 저 자신을 내려놓고 깔깔 웃으며 그 순간의 재미에만 집중하곤 했습니다. 지나고 나면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 그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눴어요. 보통 우리는 소주를 마시는데, 마시는 와중에 갑자기 어디선가 칵테일 같은 것(Bomb 류)을 서프라이즈로 사 와서 주기도 했어요. 그게 정말 웃겼어요. 갑자기 이걸 왜 사 오는 거야 정말..ㅋㅋㅋ



그는 저를 '테판이 형'이라고 불러주면서 아껴주었어요. 간혹 업무 관련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그가 저를 무한히 신뢰하고 있다고 느끼곤 했어요. 서로가 서로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기도 했지만, 업무적으로도 크게 리스펙 했던 것이지요. 한 번은 제가 크게 고통받으며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주었어요. 테판이 형이 뭐가 아쉬워서 퇴사를 망설이냐고. 그냥 나가서 더 좋은 것 찾으면 되니까 일단 퇴사부터 하라고. 덕분에 용기 내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고요. 그날 이후로 알게 모르게 제 자신감의 기저에는 그의 응원과 서포트가 자리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보통 3개월에 한 번씩 만났어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즈음 되면 연락을 주고받으며 날을 잡았습니다. 누군가의 집에서 모이기도 하고, 강남 술집에서 모이기도 하고, 캠핑을 가기도 하고, 등산을 가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2023년의 마지막날을 함께 보내기도 했어요. 올해는 2월 중순에 보고, 5월 중순에 보고, 8월에 보았습니다. 이제 슬슬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 딱 등산 가기 좋은 날인데 말이죠. 본인이 환갑이 되어도 만나줘야 한다고 미리 약속도 받아 놓고는, 약속을 지킬 수가 없게 만들었어요.


그에게 요즘 회사에서의 제 역할 변화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어요. 관련해서 고민도 많고 설렘도 많은데, 있는 그대로의 저의 감정과 생각을 그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그는 '테판이 형이라면 뭐라도 잘할 거야'라고 저를 격려해 줬을 것이고, 저는 또 큰 힘을 얻었을 것 같았거든요. 정말이지 그는 저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는 몇 안 되는 친구였습니다.  


남겨진 저는 매우 슬프고 허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어떨까요. 글쎄요. 그 누구보다도 하루의 낭비 없이 재밌게 살았던 친구였기에 감히 짐작컨대, 웃고 있을 것 같아요. 늘 그렇듯 활짝 웃으며 '테판이 형 이제 그만 울어. 난 행복하니까.'라고 말해줄 것 같아요. 


한 번도 형이라고 불러본 적 없지만.. 형 제가 많이 좋아했어요. 많이 많이 보고 싶을거에요. 

우리 꼭 어디서든 다시 만나요. 형처럼 늘 재밌게 살고 있을게요. I miss you so bad A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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