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의 POWER, '나다움'의 힘
지디의 광팬인 나는 연예인으로서의 지디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권지용을 존경하고 애정한다. 물론 세부적인 것들은커녕 평범한 그의 속성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적어도 여러 미디어를 통해 그리고 본인의 2017년 앨범인 '권지용'을 통해 공개한 평범한 인간 권지용의 이야기들에 대해 알고 있다.
최근에는 가수로 다시 컴백하여 여러 토크 쇼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유퀴즈 & 집대성에서의 이야기들이 함께 합쳐져 큰 울림을 주었다. 그간 음악적인 큰 성취를 일궈왔지만 '지드래곤'이 아닌 '권지용'의 모습이 너무 그리웠다는 것. 그래서 '권지용'이라는 앨범을 냈었고, 그 이후 '권지용'으로서의 삶을 7년 온전히 보내왔다는 것. 예전에는 '지드래곤'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앨범을 내야 하는 강박으로 앨범을 냈다면, 지금은 '권지용'이 잠시 가수 '지드래곤'이고 싶어서 앨범을 냈다는 것. 깊었던 그의 우울감과 고뇌, 그리고 그걸 이겨낸 이후의 개운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토크였다. 한결 여유로우면서도, 편함이 느껴져 나까지 기분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선 공개한 디지털 싱글 'POWER'는 음악 자체의 완성도, 탄탄함, 대중성뿐 아니라 그의 위와 같은 심경의 변화, 상태 변화들이 녹여 있어 울림을 주었다. 근래 있었던 미디어의 폭력을 재치 있게 비꼬면서도 분노와 울분의 감정보다는 '나는 나다워서 아름다워', '팔팔 날아' 등의 가사를 통해 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였다. 반복해서 나오는 'POWER'의 의미에는 이러한 정신적인 여유로움, 나다움이라는 것의 강력한 힘을 뜻하는 것 같았다.
이는 정도의 차이가 크게 있을 뿐, 비단 지드래곤만 겪는 혼란스러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누적되어 온 여러 경험을 통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지금의 모습을 꾸리게 되는데, 이 모습을 구성하는 여러 면면들의 비중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하지 못하곤 한다. '나'라는 사람을 놓고 보면 어릴 때는 '부모님의 아들', '안양외고 아이들의 친구', '선생님들의 학생'으로서의 모습이 컸을 것이고, 지금은 '딜라이트룸의 리더', '랑구 하우스의 남편'으로서의 모습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어련히 무의식적인 욕구에 기반하여 원하는 순서에 맞게 그 비중이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바쁜 현대인의 특성상 이를 심도 있게 돌아보고 짚어볼 수 있는 여유가 부족하고, 제법 긴 시간이 흐른 이후에 이를 깨닫게 되며 크게 현타를 맞곤 한다. 특히 육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 어떠한 정체성 보다도 '아이 엄마', '아이 아빠'로서의 역할과 모습이 강력하고, 오로지 그 모습만으로 2-3년을 달리다가 문득문득 '나다움이 무엇이지'라는 생각을 마주할 때 큰 어려움을 겪곤 한다.
아이가 없는 나지만 나 또한 나다움에 대한 고민이 상당한 요즘이다. 10년의 커리어 경험치를 기반으로 이제는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을 최적의 시점이라는 생각에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도 너무 많다. 또 이는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조바심으로 이어져 일말의 휴식도 용납되지 않는 강박으로 이어지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강박과 함께 나다움을 찾고 싶은 욕심이 공존한다.
딜라이트룸이라는 조직 내에서도 '스테판'이라는 이름 하에 무수히 많은 역할 (조직 문화, 채용, 내부 교육, 제품 기획, 중국 파트너십 등)을 수행하며 조금씩 다른 내 모습들을 수행하고 있다. 회사 밖에서는 수많은 소속 모임(학교, 업계, 동호회 등)에 참여하며 그 모임에서의 내 모습에 충실하고 있다. 또한 각종 가족 모임들에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사위로서의 역할들을 수행해야 하기도 하다. 최근 결혼식 및 청첩 모임, 가족 모임이 빈번해지면서 이런 나의 서로 다른 모습들을 마주할 일이 많아져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서로 다른 역할들과 모습들을 내가 무탈히 밸런스 있게 수행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저 아래와 같은 증상들이 나타나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사무치게 하곤 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회사 점심시간에 밥을 혼자 빨리 먹고 내 자리로 돌아와 쉬곤 한다. 이른 아침 헬스를 하거나 주말에 달리기를 할 때는 육체적인 개운함 보다는 정신적인 개운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기차를 타고 먼 길을 가야 할 일이 있거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갈 때 - 그 자체가 주는 해방감이 굉장히 크다. 그리고 그렇게 일상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반드시 나다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이런 글을 쓰게 된다. 나다움을 다루는 영화나 음악을 들을 때면 모든 것을 멈추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지드래곤의 컴백 덕분에 나다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친구, 동료, 리더가 아닌, 누군가의 아들, 남편, 사위가 아닌,
평범한 인간 서승환으로서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연말을 맞이하여 나 자신에게 집중해 주는 시간을 잔뜩 (조금이라도) 가져봐야겠다.
11월은 바쁘니까... 12월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