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나중에’라는 말처럼 단짠거리는 것도 없는 듯하다. 하기 싫은 일들이 있을 때 ‘나중에’라고 말하는 순간 지금 당장 마음은 편안해지만 한편으로 계속해서 그 일을 가지고 간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은 불편해진다. 또 나중에 할지, 말 지 모르는 불확실함을 내포하고 있다. 공책에 "나중에"라고 쓰고 다음 날 그 공책을 펴봤을 때도 "나중에"라고 적혀있는 것처럼 오늘의 나중은 내일도 나중이 되어버린다.
일 년 전쯤 대학교에 일할 때 뵀던 한 대표님께서 사업계획서와 발표자료를 작성하려고 하는데 혹시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하셔서 알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대가를 꼭 받아야 한다며 얼마나 받고 싶은 지 알려달라 그러셔서 오랜 고민 끝에 금액을 적어 보냈다. 대표님은 고심 끝에 거절을 하셨는데 본인이 혼자 쓰시는 게 나을 것 같고 금액적인 측면이 부담이 되신다고 했다. 그래서 도와드리지 않는 걸로 결론이 났지만 이후에 내가 제공하는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합리적인 가격을 받아내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내 능력을 지금 당장 현금으로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받곤 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매주 월요일마다 남미에서 만났던 누나에게 1년 반 동안 매주 1시간씩 하루도 빠짐없이 영어를 가르쳐줬다. 뭘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고 티켓 매니저인 누나가 그동안 나에게 주었던 뮤지컬 티켓이 감사해서 한 일이었으니 나중에 은혜를 갚은 것이랄까.
또 다른 예는 교환학생 시절 친구들의 머리를 무료로 잘라주던 일이었다.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온 친구들이 머리 자를 곳이 마땅치 않아 나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던 시절, 친구들은 나에게 헤어컷을 부탁하고 비용을 지불하려고 했지만 나는 “난 너의 친구지 이발사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나중에 내가 너의 도움이 필요할 때 똑같이 나를 도와줘라.”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도움을 받은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의 친구에게 나는 도움을 준 친구, 나중에 갚아야 할 친구라는 이미지를 심어줬었다.
이런 내가 나중에 ‘사업을 하고 싶다.’라는 희망이 있는데 이렇게 제 값을 받는 일에 대해 서툴러서야 어떻게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왠지 내가 사업을 하면 다 퍼주고 제 값을 못 받다가 끝날 것 같기도 하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도 다른 사업체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본인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하고 그 대가를 받아내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이것저것 경험해 보는 시기이고 훈련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마치 물건이나 서비스를 내놓기 전에 소비자들이 체험해 보고 좋은 후기를 남기게끔 하는 시기인 것이다. 이러면서 고도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나중에 해야지.’라고 계속 미루는 습관은 좋지 않지만, ‘지금 아니면 안 돼!’라는 강박관념도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 같다. 모든 것은 때가 있듯 그때를 준비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 나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