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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머니 박타 Mar 31. 2023

EP2. 본질을 위한 불균형

싱가포르 여행 중 발견한 의도적 불균형


 세상에는 균형 잡힌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불균형인 게 태반인 상태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를 괴롭힌 이 균형이라는 것은 글을 쓸 때도 나타난다. 글을 쓸 때 알게 모르게 글자 수를 맞추려고 하고 글의 간격이나 엔터를 치는 곳이 딱 정해져 있다. 흰색 종이든 워드든 그 안에 적히는 글들은 모두 가지런히 적혀야 한다. 어느 문장은 길고 또 다른 문장은 매우 짧으면 나는 몹시 불편함을 느낀다. 반면에 칼로 잰 듯 모든 글들이 딱 떨어질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고 글을 마칠 수 있다. 이는 사실 보기에는 깔끔해 보여도 불균형을 없애기 위해 매우 노력하여 스트레스가 몹시 담긴 글이다.



싱가포르 여행 때 마리나베이를 다녀왔는데 세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배 모양의 상판을 보면서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쪽은 분명 둥근 모양인데 반대쪽에서는 칼로 딱 자른 듯한 평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곧바로 내 심기를 건드렸다. “한쪽은 둥근데 다른 한쪽은 잘려있어 양쪽이 대칭이 안 맞는 걸..?”이라고 동행했던 누나에게 이야기하니 누나가 “야 그건 배 모양이라 앞부분은 둥글고 뒷부분은 잘려있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일리가 있었다. 모든 불균형은 이렇듯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계획된 불균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불균형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지만 곧이어 균형을 찾을 때 만족감을 준다.


싱가포르의 날씨도 매우 흥미로웠는데 바다 근처라 그런지 툭하면 스콜성 소나기가 내렸다. 영국인들이 식민지배를 했던 곳이고 영국처럼 일 년 중 날씨가 맑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라서 영국인들이 싱가포르를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이런 비가 오는 날씨조차도 불균형 때문에 발생한다. 찬 공기가 위에 있고 따뜻한 공기가 아래 있는데 서로 만나서 충돌할 때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려 하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야 비로소 균형이 잡힌다. 이 과정에서 비도 내리고 태풍도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불균형으로 인해 각종 환경오염이 개선되고 자연이 정화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걸 보면 불균형이 균형을 잡아나가는 과정은 꼭 필요한 것 같다.



싱가포르는 매우 효율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드는데 일례로 횡단보도를 볼 때 우리나라처럼 횡단보도에 넓은 줄을 그려 표시하지 않는다. 대신에 양 끝 쪽에 점을 여러 개 찍어서 이곳이 횡단보도임을 보여줄 뿐이다. 이게 꼭 대칭일 필요는 없다. 본질은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나라에서는 형식을 지키다 보니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많은데 형식은 그저 본질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 그것 자체가 우선이 되어선 안 된다. 일례로 중학교 시화전 때 각각의 매난국죽을 예찬하는 시를 썼었다. 각운, 요운 등을 맞추다 보니 예쁘게 보이는 시가 나와 입상은 했지만 결국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국어 선생님의 평가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아버지의 구두를 소재로 시를 쓴 나의 친구는 형식과 상관없이 내용의 충실함으로 금상을 받았다.



싱가포르 부자들은 정말 엄청난 부자이지만 꼭 필요한 때가 아닌 이상 겉으로 티를 내진 않는다. 필라테스 시니어 강사인 누나가 하는 말이 자기 회원들 중에 대단한 부자들이 많지만 그들은 항상 똑같은 운동복을 입고 수수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들은 운동복 따위에 많은 돈을 쓰지 않고 오히려 필라테스를 해서 코어 근육을 단련하는데 돈을 쓴다고 한다. 요즘 인스타에서 비싼 운동복을 입고 자랑은 하되 운동에는 소홀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본질에 집중하는 싱가포르 사람과 약간 대비가 되었다. 좋은 옷을 입더라도 그 옷을 입는 옷걸이가 훌륭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다. 결국 좋은 운동복을 사고 운동을 하는 이유는 건강해지기 위함이고 옷태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지 자랑하기 위함과는 거리가 있다. 형식과 본질의 불균형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지금껏 정형화된 틀 안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 같은 형식을 중요시하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불균형처럼 보일지라도 본질과 실속을 차릴 때다. 온갖 지방덩어리를 떼어냈을 때 비로소 핵심이 되는 살코기 덩어리가 나온다. 처음부터 균형 잡힌, 완벽한 것은 없다. 초반에는 실수를 하더라도 조금씩 디테일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시야가 넓어질 것이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 생길 것이고 점차 균형에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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