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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리리영주 Mar 13. 2022

우수 돌아보기

2022년둥글게 절기살이

우수 돌아보기 건너뛸까 싶었다.

우수에는 비가 오고 비가 와서 땅속 씨앗들이 쏙쏙 올라올 테니 그 모습을 보고 함께 나누며 경이로워하고 기뻐하겠거니 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결국 비가 오지 않았다.

비는 안 오고, 가는 곳마다 물이 말라 있거나 수위가 낮아져 있고, 산불이 나기 시작했고, 먼 나라에서는 전쟁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고, 대선으로 인해 사람들의 사이의 공기도 뜨겁고 건조해졌다.


하늘이 야속하고, 땅이 안쓰럽고, 나는 긴장과 피로가 쌓여, 돌아보자니 괴로웠다. 그래서 얼른 흘려보내고만 싶었다. 자연이 늘 감사하지만은 않다.  이 가뭄이 올해만의 일이 아니게 될 것 같아 두렵고 막막하다.


'복효근'님의 '강은 가뭄으로 깊어진다'는 시로 우수를 열었다. 마지막 구절 '가문 강에 물길 하나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를 소리 내어 읽어보니, 끝내 접지 않은 희망처럼 읽힌다. 말라가는 개울을 동동거리는 마음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물길에 눈길을 주어야겠다.


다른 지역에 사는 절기살이 벗님들 덕분에 우리 동네에서는  아직 볼 수 없는 산수유꽃의 노랑도 만나고, 다른 지역으로 여행 간 벗님을 통해서는 아직 남은 겨울을 만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삶의 조건 속에서 다른 일상은 살게 됨을 함께 바라보고 그것을 나누며 함께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다.

'나에게 녹지 않는 언 땅이 있다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올라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톡에 잠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담담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봄과 겨울이 오고 가는 절기를 바라보다 보니, 내 안에서 봄과 겨울이 오고 가는 것도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내 마음이라도 '봄이 왔으니 어서 겨울은 물러가라'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어둡고 그늘져서 가장 늦게 봄볕이 스며드는 곳이 어디에나 있듯이, 내 마음에도 그와 같은 응달이 있음을, 내 앞의 당신에게도 당신이 어쩔 수 없는 응달이 있음을 떠올려본다.

결국 비 같은 비가 한 번도 오지 않고 경칩에 깨어날 개구리 걱정을 하며 우수를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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