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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진 Mar 18. 2024

급류

정대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삶에 가장 거대한 물음표를 남기고 떠난다면, 우리는 그 무게를 견디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도담의 아빠인 창석과 해솔의 엄마인 미영의 시체가 함께 진평강에 떠오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도담과 해솔은 둘의 사이를 의심하여 미행을 하다 창석과 미영이 용소에서 둘이 술을 나눠마시며 수영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해솔은 충동적으로 랜턴으로 그들을 비춘다. 그 랜턴 빛에 허둥지둥 거리던 창석과 미영은 급류에 휩쓸려서 떠내려가 버린다. 창석과 미영을 휩쓸고 간 급류는 두 사람의 목숨뿐만 아니라 많은 걸 앗아가 버린다. 시간이 지나고 도담과 해솔 모두 진평을 떠나지만, 두 사람 모두 진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계속 급류에 휩쓸려 진평으로 회귀한다. 그날, 그 순간의 진평으로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걸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라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이란 건 거대한 마케팅 같아요, 제가 보기엔 잘 포장된 욕망과 이기심인데, 자기들 멋대로 핑크빛으로, 

하트 모양으로 정하고, 그게 장사가 되니까요. 사과 로고처럼"

그 이후로 도담은 사랑을 믿지 못하고, 해솔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도담은 회피로, 해솔은 강박으로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불행을 머금은 채 살아간다.

삼키지 못한 채 그렇게 머금고 있던 불행은 두 사람을 계속 조금씩 갉아먹는다.

"방안이 서로의 채취로 가득했다. 헤어져 있던 시간을 채우려는 듯 오래 서로를 안고 있었다. 

박탈당했던 행복을 되찾은 것처럼, 품에 안고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다시 잃어버릴 것처럼"

깊게 팬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채 두 사람은 재회하고 다시 사랑한다.

처음엔 서로의 존재만으로 그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트라우마라는 급류는 계속해서 그 두 사람을 덮친다.

"계속 미안해하고 사과하고 눈치 보고 그렇게....., 그게 사랑일까. 해솔은 그런 생활이 행복할까. 분노는 그 분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더욱 쉽게 뿜어져 나온다. 상처도 아무도 모르는 상처보다 그 상처의 존재를 아는 사람 앞에서 더 아프다"

두 사람은 그렇게 급류에서 벗어나려 허우적거렸지만, 그 허우적임은 결국 서로를 더 가라앉게 만들었다. 서로를 계속 짓누르면서, 그 순간을 함께했다는 사실이 처음엔 둘에게 위로가 됐지만, 점점 서로를 그저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존재로 변모시켰다. 그렇게 그 둘은 다시 절망에 잠식하고 이별을 맞이한다.


그 이후로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기까지 두 사람은 수없이 급류에 휩쓸린다. 그렇게 몇 번의 재회와 이별을 반복하고 나서야, 그들은 그 상처를 직면한다.진평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그날을 다시 마주하고 나서야, 그 둘은 진평에서 벗어난다. 증오와 원망으로 얼룩덜룩 해진 사랑이, 상처를 감싸 안은 사랑이, 그 어떤 사랑 보다 빛나 보였다.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그들을 보면 사랑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누군가 죽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을 향해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이란 말을 발명한 것 같다고. 그 사람에게 한 단어로 할 수 있는 말을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만든 것 같다고. 그때 깨달았어.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책을 읽으면서 사랑이 참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석과 미영의 사랑은 도담과 해솔을 급류에 휩쓸리게 했지만, 도담과 해솔은 서로의 사랑으로 급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사랑은 그 둘의 많은 걸 앗아갔고, 그 둘에게 많은 걸 안겨줬다. 그 둘이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다시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급류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 이후의 남은 도담과 해솔의 삶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만큼 서로를 채워줄 수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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