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는 왜 이렇게 머리카락이 떨어지냐?
시력 이쩜영이라는 형벌
“너네는 왜 이렇게 머리카락이 떨어지냐?”
아빠가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노란 박스테이프로 연신 쩍쩍 주으며 푸념한다. 우리 집에 유일하게 남자이자 청소하는 자인 아빠는 웬만한 여자 저리 가라로 집안을 청소했다. 집의 깔끔도로만 따진다면 엄마의 부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이었다. 대체 할머니는 자식들을 얼마나 깔끔하게 키우신 걸까. 왜 그렇게까지 깔끔하게 키우셔서 내가 지금껏 머리카락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걸까.
머리카락이 줄줄 떨어지는 이유를 묻는 아빠의 시력은 2.0이다. 그건 서 있어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의 개수를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아빠는 우리가 자라는 내내 박스 테이프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노란 박스테이프를 테이프 둘레만큼 뜯어내어 끈적한 면이 겉 부분으로 둘러지도록 붙여 놓으면 소위 '만능 털 청소기'가 되었다. 방바닥 위를 쩍쩍 소리를 내며 머리카락을 제거하다 보면 어느새 끈적이는 면은 시커멓게 채워지고, 열일을 마친 테이프는 예의 접착력을 잃고 장렬히 전사하곤 했다.
열일을 하던 건 박스 테이프뿐만은 아니었다. 집에는 핸디형 청소기도 있었는데, 역시나 활발한 성장주기를 가진 두 여자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줍기 위한 것이었다. 부주의한 손놀림으로 과자 가루라도 바닥에 흘리는 때에도 핸디형 청소기는 어디서고 나타나 신속하게 상황을 마무리해 주었다.
아빠나 고모들이나 뭔가를 흘리는데 지나치게 민감했다. 민감한 모습을 보자니 내 손은 더 떨려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접시를 들고 다니다 떨어뜨리는 날엔 넌 왜 이렇게 손이 야물지를 못하니!와 같은 비난 섞인 말들을 들어야 했다. 혼이 나니 떨리고 떨리니 떨어뜨리는 악순환이었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급기야 스스로를 흘림 증후군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자식에겐 이런 고달픔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시력 2.0이라는 유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 해 ‘눈이 좋다는 건 형벌이야!’를 외치며 딸과 남편을 향한 잔소리를 달고 산다. 세대를 이은 청소에 대한 운명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