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인생 정리
'아빠도 아빠 인생이 있어.'
배우 정은표의 집이 신박하게 정리됐다. 방송국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한 것이었는데 그야말로 신박했다. 정리 전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이를 키우며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터울이 지고 성별이 다른 세 아이다 보니 상황이 조금 더 힘들 게 느껴지는 부분은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는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 정은표를 다시 봤다. 세 아이를 똘똘하게 키운 것만으로 대단하다 여기긴 했었는데, 베란다 빨래건조기 앞에 낚시의자와 종이상자로 간이 책상을 만들어 대본과 영어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짠함에 절로 눈물이 났다.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세 아이 양육을 위해 그간 포기했을 많은 공간과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기 때문이다. 늘어난 가족 수로 공간이 부족해지자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공간이었을 텐데, 누구나 그 모습을 봤다면 감탄과 존경을 마지않았을 것이다.
한편, 나의 아빠는 ‘아빠도 아빠 인생이 있다’ 고 했었다. 아마 내가 중학생 때쯤이었는데, 별일 없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온 그 한마디로 충격은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그 전 까지만 해도 부모의 인생이라는 게 따로 있는지 몰랐다. 어쩌면 자식과 함께 하는 순간 부모의 삶은 없어지는 것이라, 부모는 응당 희생을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후 몇 년은 아빠 인생이 우리와 별개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배신감도 느꼈던 것 같다. 낳은 자식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깨가 무거운 일인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만해도 종종 아이로부터 잠시 떨어져 숨을 쉴 공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나처럼 아빠 역시 자신을 완벽히 없앤 채 아이들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걸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그때는 아빠가 자신의 사랑을 찾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싫었다. 아빠의 남은 삶은 생각지도 못하고 아빠로서의 책임만 다 할 순 없는지 묻고 싶었다. 그래서 소심한 반항도 많이 했다.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부모에게 희생은 강요될 수 없는 것이었다는 걸 부모가 되어서 깨닫는다. 자녀의 행복이 부모의 인생을 포기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면 더욱이 그것은 강요될 수 없다. 그것이 부모 자의에 의한 것이라 해도 조건 없이 무엇이든 퍼주기만 하는 사랑이 자녀를 성장시키는데 과연 온전하게 도움만 될는지 의문이다.
배우 정은표도 존경스럽지만, 너무 많은 희생이 자녀에게 부담으로 다가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의 인생도 신박하게 정리되어야 자녀도 성인이 되어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