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남자 이한우가 있었다. 귀화한 외국인으로서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역임할 정도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독일인. 그런 그가 쓰는 우아한 제스처, 정제되고 세련된 언어들과 부드러운 표정에 반해버린 건 내가 아니라 아빠였다.
“넌 독일인이랑 결혼을 해봐. 걔들이 참 젠틀해. 넌 개인주의라 잘 맞을 거야.”
대학생 무렵 아빠는 내게 말했다.
젠틀한 개인주의는 뭘까. 대충 알아는 들었는데 묘했다. 젠틀하게 각방을 쓸 것 같아서 왠지 쓸쓸한 느낌도 들었다. 짧은 말속에 담긴 속내는 이랬던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넌 좀 애가 무뚝뚝하고 남들 챙기는 성격도 아니니까 시댁 챙기고 살지도 않을 것 같고. 그러니까 그냥 편하게 그런 의무감 없는 데로 시집 가. 그게 너 성격에 편할 거야. 나도 이런저런 잣대에 치우치다 보니까 결혼 생활이란 게 유지하기 쉽지 않더라. 넌 그냥 네 성격에 맞는 편한 남자 만나.”
그렇다. 나는 아빠의 '이성을 보는' 높은 기준에는 빵점짜리다. 아빠에겐 아직까지 무려 이상형이란 것이 남아 있는데, 심지어 그 이상이 실존할 것이란 믿음도 있다.
“쾌활하고 싹싹한 성격에 집안일은 끝내주게 잘하며 음식을 만들 땐 항상 치우는 것과 만들기를 동시에 하기에 주변이 어질러지지 않는 여자. 작은 키의 아빠를 보완하기 위한 큰 키와 늘씬한 몸매는 디폴트이기에 외모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뒤돌아 볼 정도인 여자. 주특기는 남편 기 살려 주기로, 언제든 에너제틱해야 하며, 그 와중에 미적 센스도 보통은 넘기에 둘은 어딜 가든 눈에 띄는 한 쌍이 된다. 한국의 배우자들이라면 의례 상대에게 내뱉는 ‘으이구, 으이구’ 같은 책망의 말따윈 하지 않는다. 우아한 말씨를 지녔다.”
나와 동생이 생각하기에 그런 여성은 전 우주를 통틀어도 없다.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그로 인해 아직 옆자리가 휑한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깝다.
덕분에 나는 애초에 완벽한 이상이란 걸 버렸다.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신기루를 쫓기보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보는 것이 내겐 더 갈급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맛살을 찌푸리며 안타까워하지 않을, ‘두 부모 가정’을 만들어보리라는 굳은 의지였다. 그렇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바랬던 나는 그 소망에 부합하는 남성을 만났고 이래저래 여덟번째 해를 보내고 있다.
처음엔 진짜 외국인을 만나야 결혼이 성사되려나. 나도 아빠 엄마 처럼 금세 이혼하는 삶을 살지는 않을까 아빠의 염려까지 더해져 불안하기만 했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그런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헤어짐을 포함해 그 어떤 일도 완벽히 없을 거라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발버둥인지 몰라도, 서로가 그저 일정 부분은 포기한 채 살아간다. 그렇다보니 독일인이 아니어도 8년이나 살고 있다.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