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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통역사 Apr 02. 2019

결혼식 혼주 자리엔 아빠의 여자 친구가 앉아 있었다

자격지심이라는 칼날

“박 대리, 엄마 없이도 잘 자랐다고 그 나라에서도 소문이 파다하던데? 박 대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고?”


아빠의 여자 친구를 굳이 혼주 자리에 모신 데에는 직장과 관련한 이유가 가장 컸다. 나의 첫 직장 팀장님은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고 말씀하시기도 좋아하는 분이었다. 한 번은 내가 이민을 가서 살았던 나라에 출장을 다녀오시고는 나를 당신 자리로 불러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한인사회를 통해 들으셨는지, 칭찬에 빗대어 알은체를 하신 거다. 나는 뿌듯하기는커녕 숨고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복하게 자란 팀원에게 하시는 말씀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00 대리는 그렇게 학군 좋고 집값 비싼 곳에서 자랐다며? 아버님이 의사시랬지? 이야~ 회사 생활은 적당히 해도 되겠어.”


어찌 보면 각자가 듣기 좋은 칭찬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겐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00 대리는 유복하니 대충 해도 되고, 어려운 가정 출신은 더 열심히 해야 한단 뜻인가?’ 나는 자격지심으로 심보가 꼬인 탓에 팀장님이 ‘집안 수준에 따라 사람을 차별한다’ 고 생각했다. ‘저렇게 집안 배경을 따지는 분이면 우리 집이나 나를 얼마나 하찮게 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팀원들의 배경을 속속들이 알고, 또한 그에 대해 서슴없이 주변에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직을 하게 된다면 다시는 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이직을 한 회사에서 나는 내 가정사에 대한 언급 없이 ‘신부 측 부모’ 란에 두 분의 성함을 모두 올리고 결혼을 했다. 그러나 회사를 나와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 지금에서야 드는 후회는 ‘내 잘못이 아니었던 것을 왜 그리 죄인처럼 숨기고 살았을까’ 하는 것이다. 편부 슬하의 딸이 된 것은 나의 선택도, 잘못도 아니었다. 자격지심이라는 칼날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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