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사이드 Jan 18. 2024

엄마가 우리집에 와서 잤다 #1

우리가 엄마와 딸이 아니었다면 수다 떨다가 자고 가는 친구 사이였을까

나는 10평도 되지 않는 원룸에 산다. 좁아서 큰일 날 정도까지는 아니긴 하지만, 엄마가 자고 간다고 해서 좁을 텐데 괜찮겠냐고 여쭈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어차피 다른데 나가면 잠을 잘 못잔다, 그래서 괜찮다는 모순적인 말을 하셨다. 얼른 적당한 이유를 들어 내가 거절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다를 바가 없다. 친구들이 와서 자고 간 적도 있고 아예 안될 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엄마랑 잔 적이 거의 없다. 사실 괜찮냐고 여쭤본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할까 봐 걱정한 게 아닌가 싶다. 


엄마와 집에서 같이 잔 기억은 너무 더운 여름, 온 가족이 다 같이 거실에서 잔 정도다. 아주 어릴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잤다. (할아버지-나-오빠-할머니 순으로 가로로 이불을 깔고 잤다) 기억이 안 나는 아기 때는 모르겠지만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초등학교 1학년까지는 그랬다. 그 뒤에는 내 방이 생겨 혼자 잤다.


그러다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좋지 않아 따로 방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침 내가 5년간 자취를 하다가 집에 들어오게 되면서, 엄마는 유랑자처럼 이 방 저 방을 전전하셨다. 우리 집은 오빠, 아빠, 남동생이 있으므로 딸인 나랑 같이 방을 쓰는 게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주로 오빠 방에서 주무셨다. 오빠가 침대에서 자면 엄마가 그 아래에 이불을 깔고 자는 방식이다. 오빠가 가장 편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불편하셨거나, 내가 불편해할 것을 불편해하셨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내가 6개월 만에 다시 자취를 하게 되면서 엄마는 내 방을 쓰다가 얼마 전 혼자 살기 시작했다. 그런 엄마가 작고 귀여운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하셨다.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날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나는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엄마와 나, 그리고 남자 친구는 칵테일 바에 갔다. 7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정말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새벽 1시까지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렇게 긴 시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나는 엄마와 이렇게 오래 얘기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게 항상 슬펐다. 나는 엄마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엄마에게 얘기하다 보면 엄마는 "알겠어" 하고 짧게 끊어냈었다. 심지어 나는 엄마가 말이 별로 없는 분이라고 알고 소개해 왔다. 긴 이야기가 될지 해서 얘기하다가도 엄마는 늘 먼저 자러 가셨다. 난 엄마가 잠을 좋아하고 이야기는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누구였던 걸까.


아쉬워서 불을 끄고도 말을 하다가 겨우 "잘자"로 마무리했고 아침에는 또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러 가며 "못다 한" 이야기를 했다. 과연 이 이야기가 다할 수 있을까 싶다. 나는 엄마와 가족이 아니었다면, 못다 한 이야기를 하느라 밤이 늦어지고 서로의 집에서 자다 가는 친구였을까.


이날이 되기 하루, 이틀 전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메일이 왔다. 엄마에게 엄마의 글을 쓰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앞으로 엄마를 더 인터뷰하겠다고 했다. 엄마의 반응이 어떨까 조금 걱정한 것과는 다르게 엄마는 주인공이 됐다며 정말 기뻐하셨다. 그리고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엄마의 엄마를 만나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 늦은 밤, 엄마랑 내년 2월 제주도에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 글 제목에 방금 #1을 적었다. 우리가 이날 나눈 이야기를 더 써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