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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사이드 Jun 18. 2024

첫 번째 파국, 엄마를 잃어버리다.

나를 키워주신 엄마, 할머니를 잃어버렸다

여름이었다. 거실에서 이불을 깔고 자고 있었다. 나는 4학년이었다.


주말이었을 것이다. 늦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몽을 꿔서 갑자기 깼는데 안방에서 큰 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오빠도 옆에 있었다. 방에 있다가 나왔나? 우리는 조심조심 안방 쪽으로 갔다. 벽 뒤에 숨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점점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는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날 이전까지 우리 집에서 큰 다툼을 본 적이 없다. (오빠랑 나, 우리 둘도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거의 싸운 적이 없다.) 우리 엄마 아빠는 너무 너무 사이가 좋아라고 느낀 것은 아니지만 싸우신 적은 없었다. 부부 싸움, 고부 갈등이라는 건 드라마에서만 봤다. 이건 드라마가 아니었다. 엄마가 울며 얘기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우는 모습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그 사건이 있은 뒤, 우리는 따로 살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은 원래 살던 집에 계셨고 나머지 다섯 명 (나, 오빠, 엄마, 아빠, 3살짜리 동생)은 정말 가까운, 바로 옆 동으로 이사했다(전세로 들어갔다). 난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사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집은 너무 어색했고, 14층에서 높게 보던 세상은 5층에서 볼 수 없었고, 어린 동생을 봐주러 오셨던 파출부 할머니의 음식은 맛이 없었다...


나에게는 엄마이고 아빠였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하나 하나가 다 못마땅했을 것이다. 이사하는 날, 나는 운 기억밖에 없다. 이사하기 며칠 전 나는 당차게 서약서를 써서 엄마, 아빠에게 내밀었다. 2년 후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꼭 다시 같이 살겠다고. 엄마와 아빠는 모두 거기에 사인했다. 한참 어린 내가 우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약속을 정말 믿었. 그 날만 기다렸다. a4용지에 잘 적은 서약서는 여러 번 접어서 지갑 안에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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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후, 나는 할머니 집에 가는 것을 금지당했다. 합당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초반에는 오빠랑 같이 몰래 갔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오빠는 어느 순간 그냥 가면 안 된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나는 말을 듣지 않았고 혼이 났다.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매일 밤 울었다. 물리적으로 너무나도 가깝지만 갈 수 없는 할머니집, 학교와 학원을 오가다 그 근처를 지나칠 때면 혹시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천천히 살피며 지나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단지 안에 있는 벤치에 자주 나오셨다. 우연을 가장해 우리는 동네에서 마주쳤고 눈물을 참으며 헤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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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 어쩌면 어른들에겐 당연했을지도 모르는, 우리는 함께 살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 동생이 너무 어려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면 두 분이 너무 힘드시다는 이유를 댔다. 그 덕에, 나의 억울함과 분노는 엄마와 동생에게 미움의 화살이 되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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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곧 서른이 되는 지금까지도 가장 힘든 순간은 이 때였다. 나는 내가 평생 이 감정에서 괜찮아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 때를 회상했을 때 느껴지는 감각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적고 다듬는 지금도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뚝뚝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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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꽤 최근에, 결국 그 서약서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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