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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사이드 Jul 14. 2024

앙 깨무는 습관

엄마랑 같이 할 일 : 마음을 내려놓는 수련

나는 사각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악 뼈 자체가 (얼굴이나 몸에 비해) 선천적으로 큰 것도 있지만, 근육이 많은 것도 있다. 가장 심했던 때가 있는데, 지금은 좀 덜해졌다.


그런데, 뼈 말고 교근(깨물근)이 발달된 건, 선천적인 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의 무의식적인 습관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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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날 자다가 번뜩 깼는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를 앙 물고 있었다. 나는 이를 가는 습관이나 코고는 습관이 없다는 것을 자부한다. 심지어 뒤척이거나 굴러다니지도 않는다. 그런데, 잠이 조금 덜 깬 상태의 나는 이를 엄청 세게 깨물고 있었다. 너무 놀랐다. 


내가 잠이 들면 무의식적으로 정말 세게 이를 물고 있구나를 알고, 확인하기 위해 남자친구에게 물어봤다. 그리고 또 놀랐다. 나는 뒤척이지도, 코를 골지도, 이를 갈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잠 드는 날이면 내가 어느 순간 앙 하고 이를 꽉 문다는 것이다. 남자친구는 그래서 그걸 보고 내가 잠들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다음에도 그러면 싸대기를 떄려달라고 하고 싶었다.)


나는 20대 중반에 한창 턱 보톡스를 주기적으로 맞았었다. 계속 교근이 발달해서였다. 결론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신나게 하고있었다는 것이다.


2. 두 번째는,  1의 사실을 깨달은 뒤 우연한 계기로 일을 완전히 쉬었을 때다. 2023년에 나는 프리랜서 요가 강사를 투잡으로 하고 있었는데 개인 (디자인)작업을 더 하고 싶어서 정규직으로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당분간 요가 강사 일만 하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뒤 발목을 다쳐서 수술을 하게 되었고 20살, 성인이된 이후 처음으로 완벽한 백수가 되었다. 사실은 그 후 굉장히 불안해했고 내 기준에서 꽤나 큰 우울감을 겪었다. 다행히 고정치료(깁스같은 것을 하고, 에어부츠를 무조건 신어야 하는)기간이 지나자마자 마이솔수련을 다시 나가면서 불안이나 우울감은 엄청 해소가 되었다. 그런데, 일을 아예 하지 않으니, 신기하게도 점점 잘 때 이를 앙 다물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정말 오랜만에 보톡스를 맞으려고 했는데 교근이 별로 단단하지 않았다. (이것도 처음이다. 보통은 피부과에서 더 많은 용량을 맞아야겠다고 하는 편인데, 이 때는 안 맞아도 되겠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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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니고, 생각이 많은 요즘은 다시 교근이 발달한다. 번뜩 잠에서 깨는 날, 오늘도 좀 이를 앙 물고 잤구나를 느낀다. (하지만 나는 일을 좋아하고, 일을 하니 불안이나 우울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원래 좀 긴장을 잘 하는 사람인 것이었다. 꼭 단점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모든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까 퇴근을 해도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짜피 이게 단점이라고 해도 억지로 바꾸기 어려운, 어느정도는 나의 기질인 듯 하다. 


런데 이 조차도 엄마랑 닮았다. (물론 아빠도 그러시겠지만)


엄마도 요즘 계속 요가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체구나 연세에 비해 근력과 체력이 모두 좋아서 많은 아사나들을 굉장히 잘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요가 선생님들이 엄마에게 '힘 푸세요!' 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하셨다. 엄마 딴에는 전혀 힘을 주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도 강사님들께 계속 몸이 긴장되어있다는 말을 들으신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하' 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요가를 꾸준히 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승모근이 엄청 이완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승모근 역시 긴장성으로 발달하는 근육이다. 나도 요가수련을 할 때 조차 거의 2년 정도는 힘풀기를 참 못했었던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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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자신이 몸치이고 박치라고 했다. 그런데 나도 취미로 춤을 배웠을 때,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어려웠다. 내 몸이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있었고, 긴장하는 몸은 '긴장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춤을 배울 때 긴장하고 뻣뻣해지던 내 몸이 막춤을 출 때는 문어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기적으로 턱 보톡스를 맞던 그 때의 나는 마음의 이완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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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이를 앙 무는 습관이 있으신지는 여쭤봐야겠지만, 어쨌든 우리 둘은 몸을 앙 깨무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마음을 앙 무는 습관 때문일 것이고. 이 조차도 닮아있다니. 이번에 엄마를 만나면 꼭 얘기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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