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정답을 가진 똑같은 질문지
H가 말했다. "저는 언제 성숙해질 수가 있을까요?" "저는 쓸데없이 밝은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저는 밝은 거 긍정적으로 본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라고 했다. "쓸데없이 밝다고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내가 말했다."무리에 10명의 사람이 있으면 최소 4명 정도는 날 싫어할 수 있다. 이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모두가 날 좋아할 순 없잖아요. 근데.. 그걸 알아도 상처받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H는 "그러니까요. 정말 그게 너무 상처가 되는 것 같아요."라는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를 계속 상기하게 된다. 20대 중반을 향해가는 H는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사람 간의 관계는 매번 다른 정답을 가진 똑같은 질문지 같다. 이 대화가 계속 떠올랐던 이유가 무엇 이였을까? 나도 20대 초 중반에 이런 고민을 했어서 일까? 아니면 여전히 그런 일들에 종종 상처받기 때문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던 이 대화는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아주 어릴 적 바빴던 부모님과 각자의 시절을 보내느라 서로를 생각하긴 어려웠던 하나뿐인 호적메이트가 있었고 자아가 형성되기엔 어렸던 난 휘둘리기 쉬웠던 아이였다. 그래서 친구에게 많은 걸 바라고 의지 하며 관계에 절절매던 시절이 있었다. 이건 재앙이었다. 물론 그랬던 시절들이 있었기에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지금은 좁고 깊은 관계가 좋고 때때로 초연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관계에서도 나로서 존재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쉽더라도 등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있는 관계들이 더욱 중요하다. 편하다고 능사는 아니며 나의 동그라미 안에서 교집합으로 잘 머무르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관계는 어렵고 가까우면 가까울 수 록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가까우니 모든 걸 이해해 줄 거라는 삐뚤어진 안심은 관계를 망치는 시작점이 되니 더욱 어렵다. 하지만 어려워도 자주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포기할 순 없다. 그러니 난제 앞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운 마음을 들이고 사색하고 행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