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어폰을 두고 왔지만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by 채도해

값진 쉬는 날을 보내기 위해 보고 싶었던 영화도 예매하고 가보고 싶던 책방도 알아두고 먹고 싶었던 식당도 서치 했다. 제시간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왔다. 그렇게 버스를 타러 가는데 알아차렸다. ‘이어폰을 두고 왔다!’ 그 길로 난 좌절 했다. ‘(대략)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음악을 들을 수 없다니,,,’ 집으로 돌아가기엔 버스 시간에 늦고 돌아가지 않자니 오늘 하루가 두려웠다. 혼자 놀기 장인인 나로서 이어폰 따위에 하루의 기분과 상황을 내어 줄 수 없던 난 이어폰을 구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버스에서 내렸고, 다이소 편의점 아트박스를 돌아다녔지만 다이소와 편의점엔 8핀 이어폰을 팔지 않았고 아트박스는 문을 닫았고 어쩔 수 없이 이어폰이 없는 상태로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이어폰을 끼지 않으니 주변상황을 기민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체감한 것이다. 주변 소음을 자연스럽게 듣게 되니 마음이 느슨해진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어 나만의 소음으로 채워지는 것보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 웃는 소리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다양한 소리를 듣게 되니 안온함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이어폰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왠지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하는 마음으로 이어폰을 뒤로했다. 철저히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의 존재감을 이런 상황에서 느끼게 됐다. 혼자지만 타인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그 자체에 안온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오히려 좋아의 상황들은 많을 거라는 긍정성이 떠오른다. 하나의 상실로 여러 가지를 얻었다. 가득 찬 하루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