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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마우지 Oct 28. 2023

우물 속에서 기어 나오기

고등학교를 졸업 후 취업과 동시에 야간 전문대를 입학하였다. 실업계 출신이 나에게 인문 과목은 너무 어려웠고 기술 수업은 고등학교의 연장이라 재미가 없어 너무 힘들었다. 학기 초엔 인문 수업을 못 따라간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1학년의 기술 수업이 나의 한계를 임시로 덮어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문 수업은 더 멀어져만 갔고 기술 수업 또한 따라가지 못하게 되어 결국 자퇴하였다. 나의 좁은 세상은 지금부터 5년간 지속된다.


좁은 세상


당시 자동차 정비업의 워라밸은 주 6일을 근무하였고 빨간 날 또한 쉬지 않았다. 연차도 없다. 쉴 수 있는 날은 추석 당일과 다음 날 뿐이다. 근무시간 또한 짧지 않다. 일을 많이 하니 급여도 많을 것 같지만 처음에는 일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월 60만 원을 받으며 일했고 1년이 지난 후 150만 원 4년이 지나 2백만 원을 받았다. 당연히 성과급 같은 건 없다. 명절에 나오는 떡값 20만 원이 전부다. (물론 당시 나의 기술 능력을 대가로 급여가 정해져 나보다 많이 받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몸도 힘들고 돈도 못 벌지만 장점도 있다. 자동차를 내가 진단하고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생겨 비교적 차량을 구매하기가 쉬워진다. 이 몇 없는 장점을 살려 첫차를 구매했다. 나의 첫차는 94년식 대우 씨에로였고 당시 정비 소장님이 폐차한다는 차량을 내가 30만 원에 인수했다. 첫 운전은 너무 무서웠다. 특히 광안대교와 고속도로가 무서워서 항상 국도로 돌아다녔다. 운전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우리 집 자차로 가족여행을 실행하였다. 첫 번째 여행지는 겨울의 에버랜드였는데 벤치 난로 밑에서 불꽃놀이를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첫 번째 버킷리스트를 선물해 준 정비업에 만족하며 나의 세상은 점점 굳어져갔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면 직종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같은 업종 사람들로 채워져 간다. 물론 이 현상이 안 좋은 것은 아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 얼마나 좋은가? 나도 이 계기가 없었다면 아직까지 정비업으로 몸값을 높이고 있을지 모른다.


가기 싫은 군대


고등학교를 졸업 후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군대 갈 시기를 놓쳤다. 정확하게 말하면 돈을 벌고 있으니 가기 싫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야 하는 군대를 가기로 마음먹은 나이가 24살이었다. 친구들은 이미 2년 전에 다녀왔고 나 혼자 미필자였다. 그래도 친구들 모두가 예비군이라 군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는데 그중 기술 병과가 많고 편하다는 공군을 지원하게 되었다. 당시 복무기간 2년으로 가장 길었지만 그만큼 편하고 자기 계발 시간이 많다고 소문이 나 고학력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완전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었다. 사회에서는 절대 마주칠 수 없는 그런 사람들도 부대 안에서 만큼은 평등해진다. 계급으로 묶이며 학벌과 출신 상관없이 동료가 될 수 있다. 전역 후 그들과 만나기는 힘들지만 복무 2년간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나보다 잘난 사람은 이 세상에 어디든 누구든 있었고 그 잘남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도 이때 알게 되었다. 여기서 또 인정하지 못하고 배우려고 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나만의 세상에 갇혀 발전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살았을 것이다.


작은 세상 부수기


나만의 세상이란 무엇인가? 입대 전 정비업을 하면서 다른 직업에 대한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내가 처한 환경과 내가 받는 임금이 이 세상의 평균인줄 알았고 모두가 나처럼 사는 줄 알았다. 여기서 더 이상 발전하려고 하지 않았고 또 노력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과 같은 길을 걸어가면 될 거야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것은 믿지 못한다.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경험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와닿지 않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또래들의 이야기는 바로 현실로 들려온다. 일을 그만두고 입대한 나와 군휴직을 하고 들어온 동기와의 차이는 무시하지 못한다. 전역 후 뭘 할지 고민해야 하는 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나가서 다시 정비나 하지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나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비 밖에 없던 나의 작은 세상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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