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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Nov 24. 2023

'서울의 봄'은 단발성 한차례가 아니다

[김유경의 영화만평] 잔재미가 많은 <서울의 봄>(2023)

‘서울의 봄’은 절대권력 박정희(제5.6.7.8.9대 대통령)가 죽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 한국에 민주화의 희망이 찾아왔던 시기(1979년 10월 27일~1980년 5월 17일)를 일컫는다.  영화 <서울의 봄>은 ‘서울의 봄’을 시종일관 무참하게 압살한 신군부의 역사적 출현(1979년 12월 12일)을 처음으로 실감나게 조명한다. 김성수 감독은 수도 서울에서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광(황정민 분) 중심 하나회 조직망이 일제 가동되는 9시간을 역동적으로 연출해 그 사건에 대해 깜깜한 12세 이상 젊은 관객에게 다가서고 있다. 

      

영화는 전두광, 노태건(박해준 분) 등으로 이름을 살짝 비틀었지만, 현대사에 밝은 관객이라면, 그 둘이 각각 한국의 제11.12대 대통령과 제13대 대통령이라는 걸 안다. 하나회 패거리의 탐욕을 부추기며 작전명 '생일잔치'를 꾀한 전두광은 원칙과 정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군인 정신을 거스르는 그의 행태가 맘에 걸리면서도 간파하지는 못한 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 분),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분), 특전사령관 공수혁(정만식 분) 등은 지피지기(知彼知己)에 서툴러 결국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데 실패한다.    


(전두광의 작전명 '생일잔치')

       

싱크로율이 놀라운 미친 연기력     


<서울의 봄>은 연기 잔재미가 많다. 그중 으뜸은 황정민이 연기한 실존 인물과의 높은 싱크로율이다. 안하무인격으로 고개 쳐든 대머리 형상의 거친 웃음소리가 죽 늘어선 소변기들을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실존 인물을 빼닮은 듯한 행태가 외적 싱크로율에 크게 한몫한 거다. 그 외 등장인물들도 군더더기 없는 언행으로 높은 싱크로율에 합세했지만, 희극적인 국방장관 역의 김의성 연기는 잔상이 남을 만큼 매력적이다. 자기 안위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개탄스러운 행동 특성이 전두광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안하무인 전두광)

 

<서울의 봄>에서는 참군인 정신 발휘도 실화에 속하므로 싱크로율로 따질 수 있다. 행주대교를 홀로 막아선 이태신의 절박한 고군분투를 중후하고 참한 모습으로 연기한 정우성의 캐스팅이 돋보인다. 또한 상관에게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직언하는 헌병감 김준엽(김성균 분)은, 11월 현재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을 떠올리게 한다. ‘서울의 봄’이 한차례 지나가고 만 과거사가 아니라는 걸 일깨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힘은 들어도,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굴릴 수 있다.    


(국방장관에게 직언하는 헌병감 김준엽)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  

   

나는 놀랐다. 전두광이 하나회의 입들에 떡고물을 넣어주듯 하는 현 정권 하에서  <서울의 봄>이 상영될 수 있다는 데.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김좌진·안중근 장군 등을 기린 교내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에 착수하였고, MBC 이사진의 우여곡절과 KBS의 정권 친화적인 보도를 보았고, 뜬금없이 김포를 서울시로 편입할 거라는 발표를 들었고, 어처구니없는 양평 고속도로 노선변경 관련 보도를 들었고, 2024 수능에 대해 ‘킬러 문항’ 대신 ‘불수능(어려운 수능)’ 표현이 쓰였고 등 상식을 벗어난 불합리한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판에. 


(고군분투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인간은 극악하거나 극선한 존재는 아니다. 보통 내재하는 양심에 따라 움직일 때 도덕적 인간이라고 한다. 탐욕을 최소화하여 너나없는 기준대로 살아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만든 법보다 도덕을 우선순위에 두는 역할자를 사명감이 있다고 말한다. 전두광과 이태신이 대척점에 서 있는 이유다. 그건 옳고 그름의 시비를 따지는 게 아니라, 살맛 나는 인간 세상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곱씹는 의미다. 역사는 그런 되새김을 거듭할 때 발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봄>은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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