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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Nov 13. 2023

술술 읽히는 달거리 흑역사

[김유경의 책씻이] 촌년 작가가 촌말로 쓴 <달꽃>(청어, 2023)

자칭 “촌년, C급 작가” 이화리(필명)는 경주 본토박이다. 소설 써서 받은 문학상은 여럿이되 장편소설 <달꽃>이 첫 책이다. 심지어 MZ세대가 밀치기 쉬운 문장, “도덕산(道德山)이 붉다”로 시작해 “음력 춘삼월, 수밀도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는 계절이다”로 끝나는 작품 세계는 경주 토속어의 보고다. 물론 촌말 옆 괄호에 표준어를 넣어 책읽기에는 무리가 없다. 외려 낮은 존재였던 여성의 달거리(월경) 얘기에 빨려들게 하는 타임머신 격의 효과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달거리는 여성성을 상징한다. <달꽃>의 여성성은 일제 강점기 가부장제에서 생명성으로 존중받기보다 남성의 성적 수단이었으니 지금과는 분명 격세지감이 있다. 시몬느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는 <제2의 성(Le Deuxie、me Sexe)>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은 세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학습되고 길들어져 여성적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정조를 안(못) 지킨 영임과 상금의 그늘진 삶처럼. 

  


대하소설이 아니어서 아쉬워도 반가운      


완고한 유교문화를 반영하는 경주의 산 이름, ‘도덕산’ 주변의 붉은 기운이 만삭의 영임이 사는 외딴집을 비추는 초반부 서술의 조감도가 복선으로 읽히면서 <달꽃>은 얼핏 대하소설 무게로 다가온다. 온정이 뚝뚝 떨어지는 영임 모자의 몸짓과 청각을 자극하는 찰진 사투리 또한 예스런 시공을 각인시키며 그런 착각을 연장시킨다. 최근에 읽은 국내 신간 소설들에는 없는 감칠맛이 확 느껴져 그렇다. 그 시절 여성의 흉금에 닿게 하는 작용도 암암리에 하면서.   

 

       

  수저가 입에 닿기도 전 혀를 길게 뽑는 아이와 아이를 향해 숟가락을 든 여인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이는 마주 보는 거울 효과의 연쇄반응에 의해 주(主)와 객(客)이 하나 되는 순간이다. 즉 자식의 입에 들어가는 밥을 마치 자신의 입인 양 동일시하여 둘이 동체임을 은연중에 느끼는 행위였다. 

  “인떨아야(이 녀석아), 암만 배고파도 겅걸(걸신) 딜리디끼(들린 듯) 묵지마래이. 새알(사래) 걸린다.”

  “어매, 디기(되게) 맛있다. 칼치 더 도(줘).”  (11쪽)          



사전에서 달꽃은 달무리의 방언이다. 그러나 <달꽃>에서는 여성적 행동이자 여성성을 가리킨다. 졸지에 성폭행을 당한 상금을 가리키는 “어느 가여운 달꽃 비밀 하나를 위해”(243쪽)와, “무척 성가신 월경, 이 달꽃”(278쪽)이 그 예다. 여성이 낮은 존재였다는 암시다. 그래서 그 달꽃의 억압감이 급작스럽게 뻥 터지는 상큼한 이미지의 결말이 의외로 반갑다. 작가의 필력에 낚여 빠르게 완독한 탓에 뒷이야기가 아쉽긴 해도 상금의 해방감이 내게까지 와 닿는다. 


           

 개짐 모티프 


남성은 월경에서 자유롭다. 지금도 달거리는 여성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가신데 개짐으로도 불리던 당시는 불미한 일에 꼬투리 잡히기 십상이었으리라. 영임은 상금을 낳고 자멸하듯 죽는다. 영임의 친정인 설 씨 문중은 대다수가 천도교도였지만, 큰외삼촌 양녀가 된 상금이 근본 운운하는 유교문화의 차별적 쑥덕거림에서 놓여나게는 못 한다. 나를 놀라게 한 건 가뜩이나 기죽은 상금이 고의로 다리병신이 된 사연이다.      


일본군의 “정액받이, 성노예”를 피하게 하려 외삼촌인 의사가 상금의 발뒤꿈치 인대를 끊어버린다. 이 참담한 사건은 작가의 어머니가 정신대 차출 때문에 직접 겪은 일이란다. 또한 영임의 임신과 사망은 작가의 큰어머니가 살던 마을사람 얘기고, 어미를 잃고 젖동냥이나 암죽 대신 재첩국물로 살아난 아기(상금) 얘기는 부산의 작은 고모에게서 들었단다. 수십 년을 작가의 심중에서 발효된 여성의 그 낮은 얘기들이 <달꽃>에서 개짐스런 모티프로 쓰인 셈이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희망을  

   

  백의(白衣)의 우리 민족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해방 이듬해였다. 일본 식민지 36년 간, 봄바람은 여린 싹의 앞날에 땅을 치며 울고, 녹음은 지들끼리 부대껴 시퍼렇게 멍들이고, 단풍도 이 산 저 산 소지하듯 불타고, 눈(雪)도 긴긴밤 뜬 눈(目)의 눈물이 되었었다. 해방이 되자 봄바람은 새싹의 겨드랑이에 간지럼을 먹이고, 녹음은 튼튼한 가지에 생혈로 흐르고, 단풍도 말술에 취한 얼굴로 들썩들썩 풍년가를 부르고, 겨울이 되자 비로소 눈 같은 눈이 겨울잠으로 내린다. (138쪽)       


   

해방을 맞아 민족의 숨통은 트였지만, 일상이 적폐를 등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가는 영임의 아들 윤호, 진견(眞見) 스님을 호명한다. 상금에게는 “한 어미를 둔 오라비”다. 어미를 향한 친할머니의 패악이 합방을 못 이루게 하더니 끝내 윤호의 각시 연이를 못에 빠져 죽게 한다. 작가는 당시 여성의 성적 트라우마가 노소 가리지 않고 삶의 심층부에 똬리 틀고 있으면서 때론 남성의 일상마저 뒤틀리게 했음을 샅샅이 비춘다.  

        

자신의 안위를 타의에 맡겨야 하는 성적 피해자 여성의 갈급증에 비해 세상의 옳은 변화는 한참 더디다. 이야기 흐름에 맞춤하게 관혼상제(冠婚喪祭)를 세세히 제시하는 <달꽃>의 대목들은 당시의 세상이 흠집 생긴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했을지를 가늠하게 한다. 작가는 그런 여성을 대신하려는 듯 상금을 성폭행한 지천석과, 마을의 한참 바보인 화자를 윤간한 두 사내가 사고사를 당하게끔 한다. 읽는 중에 상금의 처지에 역지사지하던 내 체증이 가라앉는다.       


    

몇 년 전 한겨레신문사를 드나들 기회가 있었을 때, 이화리 작가를 서너 번 마주했다. 그 인연을 떠올리며 <달꽃>을 읽고 전화했다. 영임과 상금에 쓰인 모티프를 어떻게 귀동냥한 것인지 그래서 알았다. 한국어가 외계어처럼 변형(질)되는 판국에 경주 토속어가 반가웠다고, 그 시절 관혼상제에 대해 새삼 알게 되었다고, 경주에 더는 구경할 게 없는 줄 알았는데 가 볼 곳이 꽤 생겼다고, 달거리 흑역사가 술술 읽힌다고 등 수다를 떨었다. 작가의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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