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영화만평] 내 설날의 밋밋함을 걷어낸 <탑건: 매버릭>
내 설날의 밋밋함을 톰 크루즈 주연 <탑건: 매버릭>이 말끔히 걷어냈다. 만년 대령 전투기 파일럿 피트 “매버릭” 미첼이. 2022년 개봉 당시는, 또 묘기 대행진 같은 액션물이겠다 싶어 아예 외면했다. 그런데 앞치마를 두른 채 저녁 거리를 밀쳐두고 거실 의자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스며들듯 얽힌 서넛의 사연에 감정이입된 마음이 고공비행을 볼거리 이상으로 응시하게 해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시험 조종사 매버릭은 제독의 프로그램 취소 계획을 전해 듣고 일방적으로 테스트를 업그레이드로 변경해 성공한다. 아이스맨(발 킬머 분)이 손써 감방 대신 전출되어 적진의 협곡 끝 지하 벙커에 위치한 우라늄 농축 공장을 가동 전에 파괴하는 일을 맡는다. 파일럿으로서가 아닌 모교 탑건의 졸업생들을 훈련시키는 교관으로서. 그 훈련생들 중 고인이 된 매버릭의 절친 파일럿의 아들 루스터(마일스 텔러 분)가 있고, 훈련생들은 매버릭의 진가를 전혀 모른다.
매버릭을 만년 대령으로 있게 한 체제의 특성은 한국에도 있으리라. 그러나 종종 불복종 사건을 일으키는 매버릭의 능력을 인정해서 현역으로 복귀시키는 아이스맨 같은 상관이 우리 해군에도 있을까. 상대의 장단점을 알면서 장점을 격려하고 임무를 맡기려면 신뢰감이 필수다. 티격태격하던 훈련생들이 팀워크를 다지고, 매버릭이 경이로운 비행 실력을 선보인 후 편대장으로 출격하는 장면들이 이 액션 드라마 영화에 필요하듯.
그런 우여곡절의 서사는 배우의 외모에도 새겨져 있다. 옹이 박힌 나이테 같은 톰 크루즈의 얼굴에도. 코는 여전히 높지만 눈은 작아졌고, 웃으면 골이 패인 주름이 가득해서 이제 미남자와는 거리가 먼. 그런데 그 만연한 세월이 표정 연기에 한몫한다. 고공비행 시의 결기와 다급함, 루스터를 향한 애정과 안타까움, 재회한 연인 페니(제니퍼 코넬리 분)를 향한 갈망의 눈빛, 페니의 딸 아멜리아(릴리아나 레이 분)에게 들킨 뻘쭘함 등을 자연스레 빚어낸다.
“하지만 적이 모르는 것은 제군의 한계다. 그 한계를 찾고, 시험하고, 넘어서는 것이 내 목표다.”
(“But what the enemy does not know, is your limits. I intend to find them, test them, push beyond.”)
매버릭이 내게 안긴 인상적인 대사다. 목적지의 협곡 비행을 걱정하는 훈련생들에게 들려준. 보통 설날을 전후해 자기와의 싸움을 결심하는데, 그것과는 아주 결이 달라서 내 귀에 오래 머물 듯하다. 영화에서는, 자기를 살리고 적기에 격추된 매버릭을 살리려 복귀 명령을 어긴 루스터와, 적 기지에서 구닥다리 F-14를 탈취한 매버릭에 의해 최종적으로 실현된 말이다. 그렇게 무모하다 싶은 순간의 선택이 삶을 되살리는 경우가 우리 일상에도 분명 있다.
매버릭과 페니가 함께한 에필로그의 석양 장면은 옹이 박힌 나이테의 아름다움 같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