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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스러운글 Apr 20. 2023

내 작고 늙은 아기 똘이의 1주기

서로가 서로의 똘이가 되어준다.

똘이가 우리 가족에게 온 2004년부터 작년 봄까지. 우리 가족은 똘이가 없는 날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우리가 똘이를 기다리는 날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똘이가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비단 물리적인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작고 큰 모든 생활이 그랬다.


똘이는 아플 때도 우리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렸고 배고플 때도 우리를 부르며 기다렸고 우리가 나가있을 때는 집에서 기다렸으며 아침에도 먼저 일어나 우리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날에도, 똘이는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주길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은 먼저 간 다른 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주가 벌써 똘이의 1주기이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버틸 수 없던 하루하루가 지나고 무기력감이 왔고 무기력감 다음에는 허전함, 똘이가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똘이에 대한 고마움이 몰려왔다. 그러고 나니 1년이 지났다. 이팝나무가 조금씩 하얗게 뭉게구름 오르듯이 연두색 잎 속에서 피어오르는 날 똘이가 갔다. 얼마 전 엄마와 서울숲을 산책하며 조금씩 피어오르는 이팝나무를 보며 똘이를 불렀다. 똘이야, 잘 지내고 있지? 


우리 가족은 똘이가 간 뒤 애틋한 마음을 서로 붙잡고 살고 있다. 더 이상 불행하지도, 슬퍼서 못 견디는 하루를 보내지도 않지만, 우리에게는 작은 똘이의 손 같은 부드러운 끈 같은 무언가가 생겼다. 똘이의 장례식장에서 똘이의 손에 꼭 다시 만나자고 걸어준 빨간 실의 의미일까.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서로가 좀 더 끈끈한 채로 애틋해졌다. 가끔 아픈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찌릿한 일도, 기쁜 일도 주저함 없이 나눈다. 똘이가 있어서 언제나 거실에 모여 나누던 서로의 크고 작은 소식을 똘이가 없어도 서로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가 얼마나 힘들고 허전한지 안다. 서로가 서로의 똘이가 되어준다.


우리 자매는 똘이의 약값을 모으던 통장에 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에도 조금씩 돈을 모았다. 그리고 1주기가 된 다음 주, 봉사 다니던 보호센터와 정기 후원을 하던 단체에 물품 후원과 금전적 기부를 할 예정이다. 이것도 똘이가 없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똘이로 인해서 좀 더 관대해졌고 넓어졌고 따뜻해졌다. 아무리 큰 존재도 이런 걸 남길 순 없다. 똘이 덕분에 가진 것들은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될 수 없을 만큼 컸다.


가끔 똘이가 꿈에 나오는데, 얼마 전 나온 똘이는 내 팔베개를 베고 들판 위에서 누워 잠들어 있었다. 그리운 냄새를 맡으며 잠에서 깼을 때 더 이상 나는 슬퍼하지 않는다. 


똘이에게 닿을 수 있는 모든 마음을 담아 1주기에 우리 가족은 모두 모여 맛있는 것도 먹고 똘이에게 그 행복을 전해주려고 계획했다. 나의 결혼으로 이제는 식구도 늘어 똘이에게 전달될 마음이 하나 더 늘었다. 어느새 2주기가 되고 10주기가 되고 20주기, 50주기가 되어 누군가 떠나는 날까지 똘이의 기일은 계속될 것이다. 시간이 빠르다 생각하며 모두 같이 똘이를 떠올리며 2004년 봄부터 2022년 봄까지의 날을 추억할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어느 시간보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거리를.


똘이 얘기를 하면서 나오는 결론은 교훈적인 것도, 거창한 것도 없다.

언제나 같다.

보고 싶어, 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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