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치스러운글 May 24. 2024

제로웨이스트에 수렴하는 삶

첫 번째 이야기.

나는 누군가의 삶이나 가치관에 어떤 이름을 짓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비혼주의' 라든가 '딩크' 라든가...

미래란 열려있는 것인데 굳이 지금의 생각으로 자신의 미래를 매듭지어버리는 것 같아서, 어떤 누구에게도 나는 어떤 사상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한 가지 오랫동안 변함없이 가져온 생각이 있었다. 언젠가는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살겠노라고. 그 생각을 몇 년 간 머릿속에만 품고 있었던 이유는 별게 없었다.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배달음식의 재미를 알고 나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우리 집은 어렸을 적부터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 그때는 배달 어플이 발전되어있지 않아서였기도 했겠지만, 바깥음식보다 집밥이 훨씬 맛있게 느껴지게 만드는 엄마의 훌륭한 요리솜씨도 있었고, 막냇동생이던 반려견이 집에 혼자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더욱 안 나가고 꼭 저녁은 집에서 먹었다. 평생을 배달음식에 관심 없이 살았고 4인+강아지 1마리의 가족이 만드는 일주일 동안 쌓인 재활용 쓰레기는 딱 한 박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정말 적은 양의 쓰레기였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고 나는 서른 살이 되기 전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라는 것은 그랬다. 부모님께 가려져있던 숨겨진 먼지들을 보게 되는 일. 나는 대출이자, 도시락, 저녁 식사, 청소, 분리수거와 같은 일들을 해내며 내 삶을 영유하고 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그 일은 정말 고된 일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중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은 분리수거. 내가 살던 빌라는 지정 요일 없이 아무 때나 분리수거를 할 수 있었는데 내 작은 집에 플라스틱이 계속 쌓여 출근할 때마다 쓰레기를 들고나가야 했다. 도대체 나 혼자 무슨 쓰레기를 이렇게 많이 만드나 하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온통 배달용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집안일과 회사생활 속에 지친 내 몸이 저녁이라도 편하게 먹자 하고 시켜버린 배달음식들. 피곤함과 귀찮음에 온몸이 패배하고 그 편안함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달까. 퇴근하면서 편의점에서 사 오는 초코 디저트 하나가 주는 달달함이 디저트를 감싸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보다 더 좋았다. 혼자 사는 삶에서 돈은 나의 편안함과 시간을 사는 도구였기 때문에. 결혼하고 난 뒤 배달음식을 시키는 횟수는 '생활비 줄이기'라는 명목하에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플라스틱은 내 편안함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의 돋보기를 클릭하면 나의 관심사 알고리즘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켜면 항상 강아지, 살림 꿀팁 그리고 환경과 동물에 관한 것이 사각형들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뜻밖의 어느 때에, 마음속에 있었던 환경과 동물에 대한 사랑을 인스타그램으로 자위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무렇지도 않던 행동들이 조금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귀찮음과 시간을 돈으로 사던 내 생활이 종료되고 드디어 용기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한 그때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내 일상 속에서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부분을 찾는 것.

무작정 집에 있는 재활용통과 쓰레기통을 살펴보았다.



정리하고 나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가장 많은 쓰레기부터 할 수 있는 만큼 줄여나가자. 

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은 '배달음식'과 '식재료', '물티슈'였다.

결혼하고 나서는 배달음식을 잘 시켜 먹진 않았지만 한 번 시킬 때마다 플라스틱 그릇은 반찬까지 기본 3-4개가 왔고 외부에서 사 먹는 커피컵이나 빨대도 쌓여있었다. 일하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간편하게 앱으로 시킨 장거리에는 각종 야채와 과일을 둘러싼 비닐과 투명한 플라스틱 포장지가 쌓였고 식재료 보관이라고 쉽게 쓰고 버리던 투명한 주방 비닐도 언제나 함께 있었다. 닦아내기 쉽고 가벼워서 매일 몇 개씩 쓰고 있던 물티슈는 상상보다 더 많이 쌓여있었다.


무엇부터 해볼까. 그중 가장 쉬운 일은 배달음식이었다. 제로 웨이스트 실천방법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기 전까지는 일단 배달음식을 줄여보자. 배달 음식을 줄이면 일단 가장 부피가 큰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줄어들 것이다. 

배달음식을 줄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있던 배달음식을 이제는 0번에 수렴하게 줄여보자 다짐했다. 그리고 신랑과 함께 아래와 같은 다짐 같은 것을 정했다.


1. 배달음식 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은 만들어 먹는다.

2. 배달음식이 정말 먹고 싶다면 집에 있는 용기를 가져가서 용기에 포장해 온다.

3. 배달음식을 부득이하게 시킬 경우 먹지 않는 반찬들은 거부하여 쓰레기를 최대한 줄인다.


자, 지금부터 조금씩 가까워져 본다. 내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