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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May 27. 2019

내 아이에게 아침의 여유를 선물하세요

저는 작년 10월에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휴직 후 어느덧 8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저에게 육아휴직 중 제일 좋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당연 ‘늦잠자기’를 꼽을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행복한 일입니다. 원 없이 늦잠 자고, 느긋하게 아침을 먹어도 더 이상 아빠가 재촉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어린이집 등원차량을 놓쳐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등원차량 시간을 못 지킬 상황이 오더라도 ‘아빠가 직접 등원시키겠습니다.’ 한마디면 모든 상황이 해결되어버립니다. 마치 제가 슈퍼맨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내 시간을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좋은 거였구나. 매일 아침마다 감탄의 연속입니다.


전날 아이들이 늦게 잠자리에 들어 일찍 못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그 날 아침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매일같이 아이를 일찍 재우기가 쉽지 않은 데다 아이들이 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리도 없기에 늦잠은 필연적(I'm inevitable!) 일 수밖에 없답니다. 맞벌이할 때는 아이의 늦잠을 용납할 수가 없었어요. 당장 출근해야 하니까요. 아내가 저보다 출근이 빠른 편이었기에 '우리 집 등원 총책임자'를 역임하게 된 저는 아침마다 아이들과 충돌하곤 했답니다.


아이의 잠든 모습이 천사라고 누가 그랬나요? 등원차량 도착 5분 전까지도 깰 생각 하나 없이 세상모르고 잠만 자는 아이의 태평한 모습. 맘 급한 부모에겐 그저 분노의 대상입니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인' 세번과 시원한 냉수로 잠재우고, 정신 못 차리는 아이를 억지로 이불에서 끄집어냅니다. 그렇게나 많이 잤으면서 깨우려니 또 어찌나 징징거리는지. 그걸 억지로 다독여가며 기저귀를 갑니다. 밤새 싸 댄 오줌으로 기저귀는 한껏 부풀어 있지요. 안 갈아주면 찝찝하다고 징징댈 거면서 막상 갈려고 하면 어찌나 버팅기는지. 씩 미소를 지으며 베개에 얼굴을 묻고 '아빠와 숨바꼭질하기 스킬'이라도 시전 해대면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삶은 고구마를 씹지도 않고 삼킨 듯한 답답함이 올라온답니다. '어휴....' 억지로 눕히고 기저귀를 벗기려는데 예사롭지 않은 다리 힘으로 발버둥을 쳐대네요. 어느새 이리 컸는지 다리 힘이 예사롭지 않네요. 저 발길질에 잘못 맞으면 어디 하나 부러지겠다 싶습니다. 


겨우겨우 버텨내고 물티슈로 여기저기 닦이고 억지로 안아서 겨우 옷을 입힙니다. 비몽사몽하고 있는 아이를 억지로 밥상에 앉히고는 아침에 먹기 좋은(이라고 쓰고 부모가 먹이기 쉬운 이라고 읽습니다) 간편식을 아이의 입속에 마구마구 구겨 넣지요. 아주 가끔을 제외하곤 잘 먹지도 않는 식사를요. 사실 저라도 눈 뜨자마자 누군가에게 억지로 일으켜 세움 당하고 옷을 갈아입힘 당한다면 썩 유쾌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 잠도 안 깬 상태에서 내 입에 무엇인가 음식물이 밀려들어온다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그렇지만 부모는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이 없답니다. 곧 도착할 어린이집 등원차량에 아이를 밀어 넣지 않으면 출근에 문제가 생기니까요. 아이가 어느 정도 양의 식사를 했는지, 충분히 소화시킬 만큼 꼭꼭 씹는지 등은 이미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런 건 사치입니다. 마감시간에 맞춰 아이를 ‘등원 처리’해야 하니까요. 여유를 가지고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배려하고 싶지만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머피의 법칙처럼 회사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 아이는 평소보다 더 늦게 일어나곤 합니다. 그런 날엔 유독 더 시간을 더 끌고 징징거리기까지 해요. 자연스레 언성이 높아지고 표정이 굳어집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본 아이는 말을 잘 듣기는커녕 더 속상해하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지요. 그런 아이를 한 손으로 둘러업고 가방은 다른 쪽에 둘러맨 채 등원차량 도착 장소로 뛰어가 택배박스 싣듯 차에 실어 어린이집으로 배달시킵니다. 아빠 품 안에 서서 잠시 잠깐 조용해졌던 아이가 어린이집 차량이 보이자마자 가기 싫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어쩌겠어요. 출근해야 하는데. 


정말 웃긴 것은 막상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뚝 그치고 잘 논다고 하는데, 왜 제 앞에선 매번 이런 식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보내고 나면 괜찮을 걸 알면서도 아이를 등원차량에 태운 뒤 뒤돌아보는 순간 보인 '저를 바라보며 우는 아이의 눈빛'이 어찌나 가슴팍에 깊숙이 박히는지. 하루 종일 그 눈빛이 잊히지가 않아 혼자 괴로움에 울컥했던 기억도 많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전쟁을 치르고 도착한 직장이 제게는 또 다른 전쟁터였다는 사실입니다. 일과 시작부터 몰아닥치는 일이라는 전쟁 덕에 아침에 치렀던 아이와의 소규모 전투는 금세 영향력을 잃곤 합니다.


그런 저에게 육아휴직이라는 결단이 찾아왔습니다. 그 결단 후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통학차량은 8시 40분쯤에 도착하는데, 첫째는 기상시간이 이른 편이지만 둘째는 8시 30분이 되어도 깰 생각이 없답니다.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요즘의 저는 둘째 옆에서 같이 누워 잠에 취해있답니다. 8시 30분쯤 겨우 눈을 뜬 저는 한껏 잠긴 목소리로 마치 우리 아이의 늦잠을 충분히 기다려준 인격적인 아빠인 마냥 ‘선생님 죄송해요, 둘째가 늦잠을 자서요~ 제가 직접 등원시킬게요.’라며 등원차량 담당 선생님께 연락을 드립니다. 


푹 자고 일어난 아이는 어린이집에 안 가는 줄 알고 혼자 싱글벙글 거리며 식탁에 앉아 차려진 아침식사를 느긋하게 즐깁니다. 이럴 땐 미쉘링 가이드가 필요 없지요. 콘푸로스트에 우유만 부어도 진수성찬 같아 보일 겁니다. 천~천히 옷을 입고는 밖으로 나들이 가는냥 아빠를 따라나섭니다. 아이 입장에선 어린이집 등원차량이 아닌 아빠 차를 탓으니 어린이집에 가는 이 길이 일에 아빠와 함께 가는 소풍길일 거예요.


어찌 보면 별 것 아니지만 저는 이 늦잠이 참 감사합니다. 이 늦잠을 ‘행복한 잠’이라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먼저 제가 늦게까지 잘 수 있어 감사하고 우리 아이를 원하는 만큼 재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아이의 등원이 처리해야 할 '일'이 되지 않아 너무 행복합니다. 물론 매일 늦잠 자건 결코 아닙니다. 어쩌다 한번 있는 일이지요. 그래도 그런 것 있잖아요. '절대 늦잠 자서는 안된다'와 '가끔 늦잠자도 문제없다'의 차이. 이런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이게 정말 큰 차이더라고요.


맞벌이를 통해 젊을 때 빠짝 돈을 모아서 뭘 해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게 정설로 여겨질 정도로 각박한 시대. 애를 놓는 것 자체가 신혼부부에겐 정말로 큰 부담인 시대입니다. 출산 이후 수입이 반토막 나고 지출은 대책 없이 늘어나곤 합니다. 이런 각박한 시대에 아이를 놓고 키우기로 결심한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므로, 외벌이를 선택하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걱정을 이겨내야 했답니다. 과감하게 결단하고 보니 정말 감사하게도 신세계가 열리더군요. 덕분에 돈이 가져다줄 수 없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을 할 땐 아내가 육아에 전념했고 지금은 아내가 다시 일을 하고 제가 육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제가 육아휴직이 원활한 편에 속하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 이런 식의 외벌이가 가능한 것 일 수도 있기에, 모든 이들에게 ‘육아휴직을 하라.’ 라거나 '외벌이가 좋은 것이다.'라고 감히 단정 짓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내 아이들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아침의 여유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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