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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May 31. 2019

가끔 아이가 아픈 날이 있어요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녀온 뒤부터 심상치 않게 생떼를 부리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징징거리고 울기까지 하네요. 처음엔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하다가도 반복되는 아이의 짜증을 참지 못하고 신경질 내는 저를 발견합니다. 아이의 목덜미가 뜨끈뜨끈한 걸 우연히 발견하고서야 정신이 버쩍 듭니다. 머피의 법칙은 참 무섭습니다. 매번 이럴 때마다 해열제는 보이 지를 않으니 말입니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제약사에 ‘발 달린 해열제’라는 브랜드 네이밍을 제안하고 싶을 정도랍니다.


이런 위기상황 때마다 저는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봅니다. 아내는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하면 비상경계태세로 돌입합니다. 혹시나 열이 너무 높이 올라갈까 밤잠을 포기하고 아이를 간호합니다. 해열제가 어느 정도 몸에 퍼지면서 이마에 땀이 나고 열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잠을 청합니다. 이런 무지막지한 밤이 며칠식 계속되다 보면 아내도 앓기 시작합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면역력이 떨어져 옮기라도 한 것일까요. 이제 제 차례가 입니다. 멋지게 등판해서 아내가 쉴 수 있도록 아이의 열을 식혀줄 소방수 역할을 해낼 시점이죠.


그런데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내처럼은 간호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냥 애 옆에 누워서 열이 나든 말든 기절해버리기 일수였답니다. 아, 이것이 모성애와 부성애의 차이인가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루, 이틀 간호 좀 했다고 설친 잠 때문인지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쑤십니다. 아이를 간호하다 보면 옆으로 누워 자는 경우가 많아 어깨가 너무나 쑤십니다. 잠을 설치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두통은 덤입니다. 아침이 밝아올 때쯤 지친 눈꺼풀을 달래어 겨우 정신을 차린 다음 아이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아직도 열이 있네요. 어린이집 등원 전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합니다. 첫 번째 마음은 이러합니다. 얼른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고 집에서 푹 쉴 수 있도록 배려하여 아이가 빨리 회복되는 것을 도와야겠다. 그런데 두 번째 마음은 조금 다릅니다. 아, 아이가 몸이 아프면 어린이집에 못 갈 텐데. 그럼 내가 너무 힘들 텐데.


사실, 두 번째 마음이 자연스레 머릿속을 지배하는 경우가 잦답니다. 잠 못 이룬 지난밤의 고통을 달콤한 낮잠을 통해 보상받고 싶은 게 제 솔직한 마음이기 때문이죠. 아이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정말 간절한 제 입장에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집에 있다는 사실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이 자꾸만 솟아날 때면 내가 정말 부모 맞나 싶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을 하루정도 가지면서 그간 못했던 교감도 할 수 있는,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제게 주어진 것이라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요. 


이래서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늘 미안하고 속상합니다. 아이가 아픈 것 때문에 속이 상하고 밤새 간호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또 아이의 몸 상태를 알면서도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제 자신 때문에  괴롭습니다. 내가 부모가 맞는 건지. 다른 사람도 이런 건지.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건지.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참 감사한 것은 부족한 저를 아이들은 변함없이 믿고 사랑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제 마음 상태가 어떻든 아이들은 변함없이 저를 향해 웃어줍니다. 열이 올라 정신이 없다가도 열이 조금 내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거리며 안겨옵니다. 그런 아이들을 통해 저는 위로를 받습니다.  다시 한번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언젠가 좀 더 나은 부모, 아빠가 될 그날을 기약하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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