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건설회사의 현장소장이셨습니다. 현장소장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나 일이 정말 만만치 않다는 건 확실히 압니다. 군 생활을 공병장교로 지낸 덕에 사업 발주처의 입장에서 건설현장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약 2달 정도 숙식을 하며 현장을 지켰는데, 당시 현장에 계셨던 현장소장님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햇빛에 오래 노출되어 탄 얼굴이라고만 이야기하기는 힘든, 극도의 스트레스와 과다한 업무량으로 새까맣게 질려버린 얼굴. 현장에 상주한 감리단에게 매일 불려 다니면서도 부하직원들 고생한다고 다독이시며 공사를 진행해 나가시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습니다.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야근을 밥 먹듯 하셨고, 집에 안 들어오시는 게 당연한 분이셨습니다. 여유가 생기거나 일찍 퇴근할 법한 상황이 오면 어김없이 회식이라며 늦게 들어오셨습니다. 하긴, 아버지가 한창 직장생활을 하시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다 그런 삶을 사셨을 테니 꼭 아버지 본인만의 문제라 하기도 애매합니다. 요즘처럼 웰빙이나 칼퇴를 부르짖으며 개인주의적 행태를 보였다간 직장생활이 꼬여도 제대로 꼬였을 테니 말입니다. 현장소장이 되신 시점부턴 조직관리 차원에서 본인이 회식을 부추겨야 하는 입장이셨을 테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정적인 아버지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겠지요. 어쩌다 빨리 귀가하시는 날엔 온갖 설계도면과 함께 퇴근하시곤 했습니다. 맥주 한 캔 따서 홀짝이시며 거실에 한가득 펼쳐둔 설계도면을 검토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께 방해될까 자리를 피하던 어릴 적 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 어느새 아빠가 되었습니다. 또래에 비해 일찍 한 결혼 덕에 첫 아이는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지요. 이제 갓 3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의 나. 먼 훗날 아이들에게 ‘나라는 아빠’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요. 나는 어떤 아빠일까요. 누군가 우리 아이들에게 ‘아빠는 어떤 존재니?’라고 묻는 다면 뭐라 답할까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나는 집에 일찍 들어오는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일찍 들어오고 오래 머무는 것을 넘어서, 아이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는 있는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돈을 번다고 말 하지만 결국은 돈에 대한 내 욕심을 때문에 발버둥 치는 것은 아닌가? 직장에서는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행동하면서 퇴근 후에는 아이들에게 불친절의 말과 상처 가득한 감정의 찌꺼기를 쏟아내지는 않는가? 아이가 원하는 아빠의 모습에는 무관심하면서, 내가 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만드는 데 급급하지는 않은가.
가정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지키지 조차 못한 아버지. 그로 인한 상처와 그에서 파생된 감정의 찌꺼기들 덕에 평생을 고생해야 했던 상처 입은 아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상처가 아닌 사랑을 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그게 맘처럼 되지 않아 늘 미안해하는 아빠. 받은 적이 없기에 주는 법을 배우지 못해 매번 줄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매번 겪는 시행착오 속에서도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서툰 제 모습. 아빠라는 무거운 가면을 얼굴에 쓰고 고개를 떨군 채 혹여나 실수할까 두려워 떨고 있는 제 가슴속 어린아이에게 위로와 칭찬을 보내고 싶습니다.
오늘은 아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며 저를 꼭 좀 안아줬으면 좋겠네요. 당신 정말 잘하고 있다고. 당신 정말 좋은 아빠라고. 우리 아이들은 당신을 만난 덕에 정말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