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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베유 Jun 30. 2024

실패와 불안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명석한 꾸준함

실패와 불안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명석한 꾸준함.


누구나 못하는 것은 안 하고 싶기 마련입니다. 저에겐 축구가 그랬습니다. 어렸을 적 공이 지나가고 나서 다리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제 부모님은 깔깔거리며 ‘넌 축구가 영 아닌가 보다’ 하면서 비난하셨어요. 제가 가장 소화하기 어려운 감정이 ‘수치심’인데, 이 수치심이 깊게 박혀 축구를 피한지 20년. 그런 제가 축구를 꾸준히 한지도 어느덧 1년 하고도 8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공이 지나가고 차는 건... 대략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제 일정표를 들여다봤습니다. 20개월 동안 저는 70번 정도의 매치를 진행했습니다. 매달 평균 3.5번 정도의 매치를 진행했으니, 입사, 이사, 여행 등의 키워드를 빼면 매주 꾸준히 했던 샘이 댔습니다. 저는 이 수치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느샌가부터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무조건 주 1회는 하도록 마음을 먹었거든요.


늦게 시작한 축구라 당연히 남들보다 못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약간 용기를 내어 취미란에 ‘축구’를 써낼 수 있습니다. 사내에서도, 주변에서도 ‘얘는 축구를 좋아해’ 하는 피드백은 들립니다. 못한다고 마냥 비난받지도 않고요.


하지만 제 성격은 ‘실패’라는 키워드와 ‘꾸준함’이라는 키워드와 꽤 거리가 있습니다. 실패하기를 매우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것들을 계속 찾아다니거든요. 그러면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축구를 꾸준히 한 과거를 돌아보니 어느새 이 꾸준히 했던 축구가 ‘나’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공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지만 눈앞에 여러 선택지들이 있고, 그로 인해 혼란을 겪습니다. 

그리하여… 그럼에도 꾸준히 하고 있는 습관 다섯 가지를 간단히 추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꾸준함이 저의 성격이나 나다움 중 무엇을 유지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식사 - 일상을 일상답게 만드는 기쁨

> 여행(읽기) - 세상을 새롭게 보는 청량함과 환대

> 독서 모임 - 삶을 단단히 딛고 쌓는 이해와 공감

> 축구 - 잘하지 못해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게 끔 만드는 열정

> 명상 - 아무도 없을 때 스스로를 마주하는 차분함과 평화


그중에서도 오늘은 ‘축구’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기만, 성공, 새로움 — 나의 성질들.


“자신의 가치가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에 달려 있다고 느낀다. 이들은 보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감정을 억압한다. 그러다 보면 실수를 많이 하게 되고… 참기 어려운 자기 비난을 하게 된다.”


제가 신뢰하는 성격 유형에 대한 설명 중 제 성격유형에 대한 설명을 나무위키에서 가져와보았습니다. 물론 성격유형이 모든 자신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 저는 적어도 “자신의 가치가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에 달려있다고 느낀다”라는 표현이 저를 잘 설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최소한 저는 본래적으로 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제가 목표로 잡은 일이 실패로 끝나면 저 스스로도 무너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실패할 것만 같은 일에 도전하는 건 불안한 일일뿐더러, 심지어 저에게 실패할 일이 맡겨지면 더더욱 불안합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실패가 가져올 수치심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굳이 실패가 보장된 축구 판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수치심’이 깊게 박힌 그 판이었습니다. 아직도 처음, 축구(풋살)를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참여한 경기가 기억이 납니다. 2022년 10월 15일이었습니다. 약속된 경기장까지 집에서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는데, ‘잘못하면 어떻게 하지. 비난받으면 어떻게 하지. 해를 끼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들이 저를 잠식했습니다.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노래들을 들었지만 별수가 없었습니다.


1년 10개월 전인데도 얼마나 긴장했던지 아직도 그 건물, 거기서 준 패스, 몇몇 사람들의 얼굴, 피드백이 기억이 납니다. 그나마 정말 다행이었던 건 그 매치가 나름대로 제 기대보다는 성공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욕도 먹고 칭찬도 들었지만 엄청 실패할 거라는 마음가짐과 달리, 꽤 괜찮게 뛰고, 꽤 괜찮게 운동했습니다. 물론 그 이후가 문제였지만요.


70번의 경기를 할 동안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실패를 다 경험한 것 같아요. 축구, 특히 남성 축구는 진입장벽이 존재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해온 사람들은 기본이고, 가끔은 선수출신 분들도 만났습니다. 거기서 갓 시작한 신입이 체력과 열정으로 해결 볼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참 많이 졌습니다. 참 많이 못했습니다. 매 순간 잘하는 거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져도 다시 하면 돼


패배감에 휩싸여 세상 무너질 것 같던 어느 날, 저에게 친구가 ‘축구선수 할 끼가?’라며 카톡을 줬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아직까지 ‘성과가 나는 것만 무엇인가 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지만, 못하면 욕을 먹는 게 당연한 축구 소사이어티…였지만 그럼에도 그 도전 속에서 저는 조금씩 조금씩 안정감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해봐야 한다-‘라는 마음가짐은 참 많은 경험들을 가져와주었습니다. 처참히 지고 있던 순간, ’그럼에도 해봐야 한다’라는 마음 가짐이 상황을 바꿔 경기의 흐름을 바꾼 적도 있었고, 심지어는 경기를 승리로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크게 배운 건 ‘이거 져도 다시 하면 돼’라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마음에 조금씩 안정감이 생기니 오히려 ‘모든 경기에서 이기는 사람은 없다’라는 사실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잘하는 팀도 무조건 골은 먹혔습니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지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열정만으로 한계가 있었고, 체력만으로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경기를 이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축구 역사계에서도 영원히 패배하지 않은 사람이나 팀은 없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어떤 마법 같은 주문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라면 지는구나’ 


무패로 한 시즌을 끝낸 팀들조차도 많지 않습니다. 이번 년도 무패로 독일 리그를 우승한 레버쿠젠. 이들은 우승하기 위해 실패를 얼마나 겪었을까요.


잘 이기려면 잘 져야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저에게는 작은(귀여울정도의) 슬럼프가 있었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는데도 어느 순간 실력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몇 달간 실력이 늘지 않았습니다. 저는 왜 그럴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법 같은 주문이 다시 떠오릅니다. ‘사람이라면 진다’라는 문장이요.


돌이켜보니 어느샌가 제 습성은 또 ‘잘하는 것’ 만을 하고 싶어 하는 방식을 계속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성공해 본 상황, 성공해 본 경험, 성공해 본 포지션만 뛰려고 하고 그 상황이 오지 않으면 ‘그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라며 기회를 노리는 척 회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오지 않아 패배하게 되면 ‘기회가 오지 않아서야’ 라며 아주 좋은 곳에 자리를 피고 잘 숨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동일한 패턴만 반복되지 않습니다. 온도, 습도, 같이 차는 사람, 그 사람들의 장점, 단점, 생각들에 의해 정말 다양한 방식의 플레이들이 나옵니다. 저는 그 이후, 패배를 인정하기로 합니다.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플레이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축구가 계획대로만 풀렸다면 감독님이 분노하실 일 도 없었겠지요...


이후 저는 ‘내 기회를 기다리는 방식’에서 ‘지금 상황에서 이기려면 내가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을 안 쓰던 방식으로 쓰니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기대치와 타인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실력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은 이제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짧은 슬럼프를 벗어나고 오히려 다양한 플레이를 하는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불안과 실패를 견디는 방법 


최근 사내 팀 이동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약간 고민하고는 이 이동을 받아들였습니다. 재밌어 보이고, 제가 도전해 볼 만했습니다. 물론 정말 새로운 팀, 당연히 새로운 업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저번주부터 IT를 다루는 사람이 IT를 기반으로 물류 프로세스를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비난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스스로 견뎌야 할 수치심과 남들에 대한 수치심도 생기겠지요. 그럼에도 새로운 일을 안정감 있게 받아들인 건 꾸준히 했던 축구에서 배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사람이라면 진다.’ 제가 끌어올린 문장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꾸준한 축구를 통해 누구나 처음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고,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회가 노력에 대한 인정이 희박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들을 해나갈 수 있는 건 저는 축구에서 얻은 자유와 안정 덕분이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여행을 갈 때도, 책을 살 때도 ‘충족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며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 돈과 시간이면 차라리 호캉스를 하지… 맛있는 걸 먹지’ 하기도 합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한 번 도 경험해보지 않은 콘텐츠, 심지어 한 번 도 해보지 못한 일은 실패할 가능성이 당연히 높습니다. 


하지만 축구에서 배운 꾸준함은 새로 시작할 용기와 열정을 줬습니다. ‘사람이라면 집니다. 못합니다. 잘하면 천부적 재능입니다. 그렇지만 잘 질 수 있습니다. 배우고 다시 도전하면 됩니다.’하는 이야기가 조금씩 울려 퍼집니다.


종종 축구를 같이 하는 친구가 가끔 저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 이 말이 저를 항상 마지막까지 뛰게 만듭니다. 끝까지 했을 때, 저와 친구는 이길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보장된 건 있었습니다. 잘 졌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해보자는 주문의 대표적인 예시. 유럽 대항전 결승. 전반 3대 0으로 끌려가던 리버풀은, 질 것 만 같던 분위기를 누르고 후반 3골을 몰아넣는다. 이후 승부차기 끝에 우승한

나가며 - 결과만이 노력을 대변하는 사회에서 


제가 잘하는 것만 하려고 했던 이유는 사회가 ‘결과가 나와야만 노력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자신의 최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자신이 잘하고, 성공하려는 행동만 하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방법과 노력에 대한 비난은 당연해집니다. 비난을 당연히 여기고 싶은 인간은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운 좋게도 축구를 계속할 끈기가 있었고, 거기서 ‘실패해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친구의 도움을 받아 발굴해 냈습니다. 축구는 저에게 그럼에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는 강한 도구이자 콘텐츠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아직까지는 결과를 중시하고, 노력조차 보려고 하지 않는 사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더 잘하려는 욕심이 계속된 실패를 만들어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실패조차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제 슬럼프도, 실패도, 축구에 대한 망설임도 모두 여기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축구를 시작할 때 거의 무조건적인 칭찬과 무조건 적인 박수 그리고 ‘괜찮다’라는 말을 연발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 축구를 잘하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불안과 실패를 견디게 할 수 있는 습관이 있나요? 더 나아가 불안해도 좋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누군가가 있나요? 최소한 축구 선수의 책임이 있지 않은 영역에서는 우리 조금 더 자신과 타인에게 유해 져보는 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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