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름 Feb 21. 2024

3. 제 친구들은 제가 똥을 먹으면 무슨맛인지 물어온다

내가 나여도 안전한 관계


기독교 배경의 미션스쿨에 다녔다. 수요일 1교시 채플 시간이 되면 강당에 모두 모여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가사중에 주님은 나의 반석 이라는 가사가 있었던 것 같다. 반석이 무슨 뜻인줄 몰라서 찾아봤는데, 뭔가를 단단하게 받치는 바닥에 있는 디딤돌 이라는 뜻이었다. 학교에는 반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얇은 테 안경을 쓴 선배도 있었다. 아버지가 목사님인가 그렇다고 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반석이라는 말을 그 시간 이후로 써본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그 의미가 참 맘에 들었다. 나는 불안과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라 그런지, 나를 안정시켜주는 것들을 갈구한다. 나에겐 아마 내 친구들이 나의 반석일 것이다.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나를 좋아하고, 떠나지 않아서 나를 안심시키는, 나에게 안정감을 줘서 서 있을 수 있게 지지해주는 사람들. 나는 내 친구들을 무척 좋아한다. 




나는 어릴적에 외로운 아이였던 것 같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쉽사리 좋아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쉽사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왠진 몰라도 세상에 없을 것 같았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친구인데,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만큼 이상한 사람을 찾는게 쉽지가 않았다. 나를 수그리고 굽혀서 아무리 어딘가에 껴보려고 해도 즐겁지가 않았다. 내 마음은 자주 표류했다. 




대학에서도 외로운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전공한 문화인류학과를 찾기 전까지. 심지어 그 전공을 찾은 것도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해에 새로 생긴 학과로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그때는 몰랐어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학과를 졸업하고나서 나는 그때 적극적으로 이상한 곳에 가면 적극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을 찾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금 깨달은건데, 나는 왜 이 룰을 직업을 구하는데서는 적용하지 않았을까? 늦게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지만..


사람을 알아가는 것, 대화를 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걸 친구들을 만나며 처음 알게된 것 같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계속 그걸 강화시키는 이런 저런 행사들에 가고 공부를 하면서 그 취향과 가치관이 더욱 강화되고, 그런 시간들이 며칠씩 몇년씩 쌓이며 나는 처음 느끼는 종류의 유대감을 느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의 세줄 요약 '인류는 여기저기서 이상한 짓을 많이 하면서 살았고요, 그건 모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적절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이상함은 언제 어디선가는 정상입니다.'은 내가 스스로 어깨에 얹어놓은 나는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돌덩이의 무게를 크게 덜어주었다. 나는 이 시간 동안, 함께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지적으로 배웠고, 왜 재미있는지를 경험을 통해 배웠다. 학교에서는 '서로 돕는게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이며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를 배우고, 저녁이 되면 힘든 친구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힘들때 자리를 요청하는 나날들이 4년간 계속되자 그냥 뭔가 끈끈한 것이 생겼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바운더리를 침범하지 않는 경험은 아주 멋졌다. 힘든 일이 생기면 친구네 집으로 가출을 했고, 친구는 나를 잘 왔다고 기뻐하며 재워줬다. 엄마가 친구들은 시간가고 각자 가족이 생기면 흩어지는 거라고 했지만, 언제나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다그치며 힘들게 하는 건 가족이었고, 친구들이랑 있어야 제대로 숨을 쉬었다. 이해받는다는 기분은 영혼이 목욕하는 기분이었다. 가출을 축하한다고 장미꽃을 서로에게 사다주었다. 힘들때면 서로의 집에서 몇달이고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그게 왜 좋냐고 되묻지 않고 즐거이 함께 하는, 갈 수 없으면 다녀와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기분은 정말 멋졌다. 이래서 사는게 재밌는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학생때는 그래도 태어나지 않는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지만. 원래 그런 생각들은 바뀌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법이다. 


가출한 친구에겐 꽃을 주는 따뜻한 풍습



꿈같은 대학시절의 시간은 지나고 회사생활을 한지 7년차, 30살 생일이 목전이었을 때, 나는 내적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꽤 번듯한 직장에도 다니고, 종종 맛집도 가고, 좋아하는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는데 왜 삶이 이렇게 허망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관계에서 얻는 것 외에 스스로 성취한 것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내가 성취한 것들의 절반 정도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익명의 다수가 인정하는, 검증된, 안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즐거움은 친구들에게서 찾고, 일은 즐길 수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해두었다. 금요일 오후부터만 숨이 제대로 쉬어지고, 일요일 아침부터는 몸무게 외에 어깨에 끔찍한 모래주머니를 올린것 같은 시간을 몇년이고 보내왔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대충 좋아보이는 것을 대신 성취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비교에서 만족을 찾았고 내 안에서 뭐를 원하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마음에 눈가리개를 씌워 소외시켰다. 그런 일을 할 때는 1초라도 틈을 주면 내가 잘 살고 있나? 하는 무척 무서운 생각이 들기 때문에, 혼자 생각할 시간이 없도록 눈코뜰새 없는 스케줄링을 지향했다.  


그 와중에 친구들은 커리어를 디벨롭하거나, 장기연애를 하는 애인이 생겨 한 집에 살게 되거나, 뭔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며 하나씩 자기만의 여정을 떠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친구들밖에 없었고, 사실은 그 때 나만의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속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속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야 20살때부터 외국에 가겠다고 노래를 불러왔던게 그나마 유일한 나만의 욕망이라는게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밖에 단서가 없어서 그것을 하지 않으면 내 마음으로 가는 길은 미궁에 빠져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될 참이었다. 


30살에 전공도 직업도 바꾸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며 외국을? 여기서도 살만한데? 쌓아놓은게 너무나 많은데? 내가 혼자 내린 선택은 너무 무서워서,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깨면 발이 차가워져 있었다. 안가도 되는 걸 알았기 때문에 몇번이고 마음을 다시 먹었다. 그만둘까?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그 선택이 얼마나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었냐는 차치하고도, 내가 나 혼자만을 위한 인생의 선택을 내린다는 것이 너무 말도 안되게 낯설고 무서웠다. 아무도, 빨간 펜 들고 제가 좋은 선택을 한 건지 점수 매겨주거나 박수 쳐주지 않는다고요? 그럼 저는 제가 좋은 선택을 내린건지 어떻게 알아요? 네? 제가 저를 인정해줘야 된다고요? 왜요? 저는 '아무'도 아닌데요? 좆됐네.. 나는 내 인생을 위해 내리는 선택은 무슨 영화를 볼까, 무슨 레스토랑을 갈까 하는 것이 전부였단 말이다.



무슨 레스토랑을 갈까 하는 것은 아직도 인생 주요 주제로, 위 사진은 토론토 최고 보쌈 맛집입니다


그렇게 어쨌든 부들부들 떨면서 캐나다로 왔다. 아무도 모르는 땅에서 혼자 31살이 되던 생일날 나는 너무 무서웠고 외로웠다. 아무것도 확실하게 보장된게 없는데 아무 권위도 없는 나자신 따위가 이걸 시켜서 해야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뭐 하다보니 또 재미는 있었다, 당연하지, 내가 시킨거니까. 나는 원래 재미는 확실하게 챙기는 사람이라고. 남이 시키는 일 하니까 매일이 너무 지루했던거지 뭐. 몇년이 지난 지금 어찌저찌 나는 졸업도 했고 직업도 구했고 고양이도 생기고 연애도 하고 토론토 순대국 맛집도 찾고 친구들도 생겼다. 친구들이 없으면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일을 실제로 하는건 미친 짓이라 생각했는데 막상해보니 너무 재밌었던 것이다. 멀어질까봐 무서웠던 친구 관계들도 아직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관계는 잃을까봐 부들부들 하지 않아도 지켜졌다. 내가 홀로 설 수 있을 때 관계는 더 깊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친구들을 무조건적으로 아낀다고 생각했지만 혼자 있기 싫은 공포와 두려움을 직시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이 필요했던 건 나였던 것이다.  



한국에 있을땐 설이 싫었는데요, 마음가는대로 살다보니 설에 대한 미움도 사라졌습니다. 비경상도인인 친구랑 먹어서 떡국에 만두 들어감.


하여튼 내가 시키는대로 사는 일은 꽤 재미있는 것 같다. 대체 왜 이딴 짓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는데 가만히 앉아서 조곤조곤 하는 말을 들어보면 또 영 말이 안되는 바는 아니다. 혼자서 상담을 받으면서 1년간 엉엉 울다가 10회짜리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한밤중에 결심한다던가. 왜 갑자기 개발자가 되겠다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재택근무를 하면서 수수께끼같은 문제를 풀어내고 너무 기뻐한다던가. 인생은 무한한 주관성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 내가 원하고 재밌어 하는게 유일하게 맞는 길이라는 것을 부들부들하면서 배웠다. 왜 어떻게 정확히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내가 똥을 퍼먹어도 친구들이 다 나보고 무슨 맛이냐고 물어봐줘서, 내가 날 안 믿을때 친구들이 날 믿어줘서 다 할 수 있었다. 요즘 내 삶은 할일이 너무 많은데 마음은 단순하다. 돈벌고 글쓰고 솔직하게 명상하고 씩씩하게 싸우고 모르면 물어보고 가끔씩 하늘을 보며 친구들을 생각하며 살면 되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친구들이랑 보내는 명절이 최고 즐거운 법






작가의 이전글 2. 가족이 불편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