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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Feb 21. 2024

2. 가족이 불편하다

가장 친밀한 관계가 불편할 때 


가족 여행은 대환장파티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바는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내 주위 친구들도 몇년에 걸쳐 잘 알고 있는 처사,. 나는 대체로 가족을 불편해하지만 엄마가 가족여행을 가자고 하면 무조건 가는 수순을 따라왔다. 이는 내가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고,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걸 이용해 잘 꼬셔서이기도 하지만, 그냥 엄마가 얘기하는 것을 거역할 수 없다는 어떤 습관적인 가족내의 흐름 같은 것이 있어서가 더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부모에게 '아니'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가까운 사람에게 No라고 말하면, 그 애정이 철회될 것 같고,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실제로 문제가 생겨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밴프는 죄가 없다 밴프는 아름다웠습니다




우리 엄마는 어떤 의미에선 전형적인 한국 엄마인데 좀 웃긴데도 있고 나쁜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 전형성이 주는 파워로 본인은 모르게 다른 사람을 좀 못살게 굴 때가 있다. 마치 아이유가 사랑은 다 좋은건데 왜 헤테로라고 해서 퀴어 슬로건인 Love Wins라는 문구를 쓰면 안되나요 하는 것처럼, 그런 해맑음으로 다른 사람을 질식시켜버리는, '다른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는데 너는 왜 그러니'를 긍정적 의도만으로 시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대체로 내가 어떻다는 특징을 드러냈을 때에 그것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어린시절을 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은 교정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수줍었던 어린 시절에는 엄마 손에 붙들려 웅변학원에 가야했고 (나는 정말 순한 아기였는데 이건 정말 너무 극혐되어서 악을 쓰고 계단 난간에 매달리며 둘쨋날부터 안가도 되는 쾌거를 거뒀다), 혼자 조용히 있어야 사회적 배터리가 충전되는 아이였지만 엄마가 돌아올때까지 근처 이모집에 맡겨져서 저녁 늦게까지 이모네 가족들과 있어야 했다. 그 모든게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나는 나의 무언가가 친밀한사이에 '적절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것인가' 라고 검열하는 사람이 된 것은 사실이다.




예를들어 우리집에서는 문이라는게 별로 필요가 없었고 내 방문은 대체로 열려있어야 했다. 성공하는 스타트업 테드톡을 어제 들은 영포티 씨이오의 신사동 스타트업 오피스처럼 모든 벽은 사라져야했고 모든 문은 열려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에 아무도 없을 때 가장 편했다. 아무도 없는 집 거실 마루에 태양빛이 따뜻하게 들이쬐는 낮 풍경은 내가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던 장면 중 하나다. 한국의 많은 가부장들이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따뜻하고 환하게 불이켜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나는 어둠만이 기다리고 있는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좋다. 나는 무척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지만 감히 말하건데 단 한번도 집에 불이 밝혀져있지 않아서 외롭거나 불행하다고 느꼈던 적은 없다.




어둠컴컴한 집에 고양이만 있는게 제일 좋습니다







나는 여하튼 그래서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가 되고 나면 어떻게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건지 자문하고는 했던 것 같다. 지금마저도 가족과 여행을 가면 나는 내 일과를 끝낸 뒤 내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에어팟 프로를 낀 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게 가장 즐거운 나. 나에게 가족은 '책임감'의 상대이지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관계는 아닌 것이다. 나에게 가장 친밀한 관계는 '책임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지난 나의 연애도 다수 설명한다. 허니문 페이즈가 지나 안정적인 연인관계가 되고 나면 '즐거움'에서 '책임감' 으로 관계의 성격적 변환이 일어났던 것이다. 제 시간에 안 온다? 화가 난다. 일주일에 두 번 만나야 되는데 (아무도 그렇게 정한 건 아니고 나 혼자 정했다) 그게 안 지켜진다? 화가 난다. 매일 문자가 안온다? 화가 난다. 이번주는 일이 많아서, 몸이 안좋아 피곤해서 등등은 모두 변명으로 치부된다. 나자신에게도 냉정하게 말하건데 그냥 보고싶어서는 아니다. 왜 의무를 다하지 않지? 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피곤할 때도 매번 문자했는데, 문자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매번 문자했는데, 왜 얜 제대로 안하지? 어? 너 정신 똑바로 안챙겨? 마치 오늘 하루 피곤하다거나 아프다고 해서 학교를 빠지면 안되는 것처럼 살아야지.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야 하는 강인한 한국인 몰라? 교과서를 안 가져와? 전쟁터에 총을 안갖고 오면 어떻게 돼, 어? 하지만 연애나 친밀한 관계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죽을것 같으면 그냥 집에 있자, 친밀한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죽으면 트라우마만을 남길 뿐이니까...  




요즘도 그렇다. 겨울이라 너무 힘든데 이럴땐 난 혼자만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힘듦은 혼자 해결하는 걸로 배워왔기 때문에. 그래서 힘든 시기일수록 친한 사람과 기분 얘기는 하지않고, 만나는 주기도 멀어진다. 예전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글쎼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는 않는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내가 힘든 일이 생길 때 내가 혼자 좀 있고 싶어하는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원래는 내가 이렇게 느끼는지 몰라서 혹은 어떻게 잘 거절해야 되는지 몰라서 일단 만난 후 짜증을 냈다), 이걸 잘 전달을 해서 스스로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줄 줄도 알게 되었다. 요즘 좀 힘든 시기니까 그쪽에서 연락을 좀 먼저 해줬으면 좋겠다고 차분한 말로 표현할 줄도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원하는걸 부들부들 떨면서 울며 요청하지 않고 차분한 말로 표현하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다. 사실 지금도 차분하지 않다. 애인은 내가 어려운 일이 생길때마다 부들부들하며 풀파워로 들이받는 탱크같다고 한다. 그럴때마다 그는 '진정해' 라고 하는데, 모든 여자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그 말은 이미 진정한 사람까지도 매우 안진정되게 하는 저주가 걸린 말이다. 코미디언 테일러 톰린슨이 이런 말을 했다. 전 애인들이, 논쟁을 할 때 자기가 쓰레기통에서 잡힌 너구리같이 화를 낸다 했다고. 거기에 하하 웃을땐 그게 내 얘기인지 몰랐다. 인생이 이렇게 재미있지요. 




상담선생님이 한번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성향이 문제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문제가 생길때마다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독립적인 걸로 볼 수도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더이상 저를 싫어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그말을 들은 상담사의 표정이 아주 밝았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스스로에게서 고치고 싶은 점을 오백개씩 쓰면서 행복하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냥 나의 모든 점을 그럴수도 있다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지지 못한 부모가, 스스로에게 되고 싶다.





겨울엔 좀 혼자 있어도 됩니다 돌아다니면서 이런 사진도 찍고



신경다양인(뉴로 다이버전트,Neuro divergent)들에게는 parallel playing이라는 컨셉이 있다. 한국어로 말하자면 평행 놀기라는 것인데, 한 공간에 같이는 있지만 각할모, 각자 할일 하는 모임 같은 것이다. 뉴로 다이버전트들은 예민하고, 그래서 쉽게 지치며, 다른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관심사가 있다. 애정을 거두지 않은 채로 각자 할일을 하게 내버려두고 따뜻하게 가끔 체크인 하는게 시간을 보내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엔 이상한 일이 많고 우리는 쉽게 피곤해진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이 되어 나를 좀 이해해주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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