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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Feb 21. 2024

1. 내가 상담을 시작하게 된 이유

이상한 일들이 잔뜩 일어나고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이해가 안됐다


나는 작년 2월에 상담을 시작했다. 언젠가 상담을 하긴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2월은 대체로 의욕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시기니까 그냥 그정도의 마음으로 상담을 신청했다. 그 전 해에 나는 좋아하던 친구를 잃었는데, 그 친구를 멀찍이서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엉엉 울었다. 마치 헤어진 전 애인을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내가 그 사람을 아직 잊지 못한 걸 그제야 깨달아버린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이 들었던건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사실 캐나다로 오고나서 처음 들었던 마음들이 많이 있었다. 처음 겪는 상황은 아닌데, 감정의 강도가 전혀 달랐다.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헤어졌는데 왜 이렇게 집안에 있을 수가 없고 차를 렌트해서 밤늦게까지 우버잇츠 배달을 하며 어디론가 운전을 해가고 있어야 하는지, 원래는 달리기를 열심히 하고 서너달쯤 지나면 좋아하던 사람도 대충 잊혀졌는데 이번엔 왜 몇달이 지나고 괜찮다가도, 프랑스어 하는 여자친구를 스포츠카 옆자리에 앉히고 달리는 전남친 꿈을 꾸는건지, 친한 친구랑 멀어졌을 뿐인데도 커피 세잔은 먹은 것처럼 심장이 떨려서 잠을 잘 못자고 아침에 퉁퉁 부은 눈으로 일어나 '우리 얘기 좀 해'라는 문자를 찌질한 구애인처럼 보내야 하는건지, 그런 일들을 계속 겪고 나자 내가 뭔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일들이 잔뜩 일어나고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이해가 안됐다. 




원랜 뛰면 됐거든요? 이젠 안됩니다




상담을 시작하고 두어번인가 했을 때, 상담사가 내가 좋아하던 친구에 대해서 좀 내가 생각하던 것과 다른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건 아닌데' 라고 생각하고 그걸 고쳐주는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상담을 그만두었다. 다른 상담사를 찾아야지. 두어달 이후에 다시 그 상담사에게 돌아간 이유는 단순히 다른 상담사를 구할 에너지가 없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내가 뭔가 생각이 다를 때 그걸 고쳐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것도 우리 상담의 큰 주제였으니까. 저는 그 무섭다는 불안정애착 회피형입니다. 아니지, 사실은 더 무서운 끝판왕 혼란형입니다. 무섭지 어흥.




누군가 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내었을때, 그것을 고쳐주는, 내 의견을 표현하는 일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당시 나의 사고방식 중 하나였다. 나는 사람을 변하지 않는 섬처럼 보는 경향이 있었다. 멀찍이 서로에게서 떨어져 있는 섬. 서로 크게 건드리지 않고, 힘든 일은 혼자서 해결하는. 다 해결하고 나면, 그 때 그런 일이 있었어. 너에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그 때는 말하지 않았어 라고 하는 섬.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런 사고방식으로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다. 사람들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리스크가 큰 장사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려고 하고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사람들은 편해하고 좋아한다. 나도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편해하는 것을 큰 칭찬으로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 떨어진 두 섬끼리 섬 이상의 친밀한 관계가 되기는 조금 어렵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감정이 얽히고 불편한 일이 생긴다. 상대가 내 바운더리를 건드리기도 하고 선한 의도로 상처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둘의 삶이 하나로 묶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나는 고장이 났다. 상대를 변화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상대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까지도. 여기까진 내 바운더리야, 넘어오지 말아주도록 해 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심이 적은것 혹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대도 나에게 뭔가를 요청하면 절대 내가 그를 위해 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이건 내가 상대를 덜 좋아한 경우). 혹은 내가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바꾸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속으로는 화가 너무나도 났다(이건 내가 상대를 무척 좋아한 경우). 원래 피플 플리저는 속에 화가 많다고 한다. 





어스름 내리지는 길거리를 맘정리한다고 많이도 걸었다




나는 내가 좋아한 친구가 (내 짐작에) 나에게 원했던대로 나의 많은 것을 바꾸려고 했다(어휴 그놈의 짐작).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방법이었으니까, 나의 욕구를 희생하고 포기하는 것, 그건 나중에 혼자 있을때 채우면 되니까. 그러나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사과를 하는 것은 지는 것 같았고, 애정이란 건 하지 않는 편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더 쉽고, 사랑은 덜할수록 좋은 장사라고 생각했다. 원래 자기자신을 배신하는 일은 아무리 순한 사람이라도 화가 나는 법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런 권력과 계산이 없는 친밀함과 다정함을 갈구했다. 내가 애초에 그 친구를 그렇게 좋아했던 이유는 내가 약한 모습, 쿨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을때 그 부분을 놀리거나 불편해하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주고 도와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세계가 있는 줄도 몰랐다. 캐나다에 오기 전까지는 아마 필요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캐나다에 오기 전까지의 나는 어려운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단단한 성채를 잘 만들어놨었거든. 좋은 직장, 좋은 친구들, 가족과의 적절한 거리, 고양이. 그것들은 잘 작동했다 모종의 이유로 내가 캐나다에 와야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 




나의 예전 방식은 그냥, 이젠 내 삶에선 작동하지 않았다. 왠지는 모르겠다. 수많은 스스로의 거짓말에 질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재건축의 접근방식은 심플해야했다. 나는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싶은가? 만들고 싶다. 그러면 방식을 바꿔야 했다. 내가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했으며, 내 불편을 표현하는 방식, 날 위해 뭔가 바꿔주기를 요청하는 방식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4월에 다시 돌아간 상담사에게 나는 정확히 저 단어들을 사용해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때는 내가 겪고있는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단어조차도 없었다. 대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거기서 편하고 싶어요."




그걸 위해 사고방식을 뜯어고치는 일은 무척 지난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에 대해 충격적인 사실들을 많이 배웠다. 내가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을땐 스스로를 멋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감정을 아주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 내가 좋은 성취를 거뒀을 때야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불안이 그동안 나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동력원이었다는 것, 나는 마음이 긴장되고 불편한 상태를 익숙해서 좋아한다는 것,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인정을 갈구한다는 것. 정말 기가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도대체 이 웃기는 사람은 누구야?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나씩 정리해서 풀어가볼까 한다.





사고방식 뜯어고치는 중 (공사중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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