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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Jul 21. 2023

사랑에 관한 에세이 1 - 강렬함

나는 사랑에 대해 쓸 수 있을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 인생에 대한 의지의 표현. 생각을 현실로 이루어내는 상상력과 행동력의 총합.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랑만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 그리고 그 착각이 이뤄내는 일시적 현실. 이 모든 것이 뇌에 가져다주는 마약같은 달콤한 환각. 이 사랑이 끝나도 다시 비슷한 경험을 이뤄낼 거라는 중독적인 약속. 그 약속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 환각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회귀적이고 반복적인 발생. 이것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죽는다. 태어났을 때보다 조금은 지혜롭고 복잡하게,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홀가분하게.

 

나의 첫번째 사랑은 대학교 3학년 때 일어났다. 사실 학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봄 혹은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그 해 나는 체코로 교환학생을 가기로 되어있었다. 9월 가을학기에 시작이었으므로, 8월에는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했을 것이고, 그 해 그 사람과 같이 지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교 앞에는 작은 펍이 있었다. 쉬바펍이라는 다소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가진 이 펍은, 인도 여행을 갔다가 쉬바 신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 주인분이 만든 펍으로, 아마 쉬바가 한국어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에 약간은 농담거리로 만든 이름이기도 했을 것이다. 세계맥주가 유행하던 당시 각종 세계맥주들을 가득 채워놓은 냉장고와, 당시로선 최신 유행이던 물담배가 있었다. 얼마간을 내면 물담배 하나를 잔뜩 피울 수 있었고, 친구 서넛과 돈을 모아 병맥주 하나 물담배 하나를 사서 긴 밤을 즐기면 하루가 어떻게든 가곤 했다. 주머니는 얇고 시간은 많고,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내가 그동안 믿어왔던 것은 더이상 반짝이지 않고, 그래도 공무원시험 준비는 내 인생의 진로가 아닌 것 같고 그런 날들이었다. 그런 저녁이 올 때마다 나와 친구들은 똑같이 길 잃은 날파리들처럼 거대한 서울의 작은 불빛 속으로 모여들어 온갖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거기서 그 사람을 처음 만났다. 그 사람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나보다 나이가 9살 많았으며, 그러므로 당시 31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나이가 참 많아보여서 나랑 내 친구들은 그를 용저씨라고 부르곤 했었다. 이름인 용에다 아저씨를 붙여서. 이 사람을 5년 만났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니까 그렇게 되었다. 5년은 지옥같음을 버틸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이자, 찰나였던 좋은 시간을 추억 삼아 버티기에 가장 긴 시간일거다. 몇 년 전 내가 그 사람의 나이가 되기 시작할 즈음부터 그 사람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희한했다. 마치 내 뇌가 이제 이거 해석할 수 있지? 하고 오래된 숙제를 던져주는 것 같았다. 

 

보통 연인 사이 첫 삼개월은 허니문 기간이라고 불린다. 나는 남들보다 대체로 조금 빠른 편이기 때문에 내 경우엔 대체로 2개월이다. 아마 첫 2개월간 나는 즐거웠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 한국 밖에 새로운 나라가 있고 문화가 있고, 여자가 운동을 많이 하고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말을 좀 거칠게 하며 의견을 표현해도 존중해주고 심지어 멋지게 봐주기까지 하는 사람은 나에겐 처음이었다. 항상 새로운 것들을 하고 즐거운 데이트를 했다. 떨어져 있을 땐 너무 불안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은 항상 즐거웠다.


2개월이 지나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문화적으로도 많이 달랐고, 그걸 조곤조곤하게 이해시켜줄 사람은 아니었다.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고,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주 화를 냈고, 인종문제에 따른 남성성 이슈도 있었다. 그 때의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힘들었다. 불면증이 생겼고, 담배를 많이 피웠다. 그러나 나의 결핍이 그가 아니면 안된다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 이상의 강력한 결합의 힘으로 나는 떠날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래 만나고,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을 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정적이어졌을 때, 나는 안심하고 그를 떠났다. 그제서야 비겁하게 내가 받았던 상처를 그에게 돌려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서,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줘가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떠났다. 그리고 궁금해했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지. 

 

삼십대가 넘어가면서, 여태껏 수많은 데이트를 하면서, 데이트들이 나에게 잘해줄 때마다 아 그 사람도 이렇게 나에게 잘해줄 수 있었는데 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비 오는 날 남자친구 집에 들어가자마자 따뜻한 차를 대접받을 때, 아침에 보고서 저녁에 또 보고 싶어서 달려오는 남자친구를 볼 때, 그사람 생각이 얼핏 나면서 서운함이 10년이 지나 스쳐가는 걸 느낀다. 보살핌받고 사랑받고 싶었구나 그때의 내가, 라고 뒤늦게 깨닫는다. 아이다운 유치함을 어릴때부터 거세당해버려서, 내 안의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받고 싶다는 것이 아직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리고 나서 알게됐다. 그 경험을 해석할 도구가 나에게는 없었구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있다는 걸 몰랐고, 그걸 요청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걸 물어보고 들을 답이 너무 무서웠다는 것도 몰랐고,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사랑을 요청하지 못했다는 것도 몰랐고, 이 모든걸 어디까지 모르는지도 몰라서 그 경험이 해석이 안된채로 남아있었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뭔가를 경험할 때 과거의 경험들이 겹겹이 같이 오게된다는 것 같다. 가끔 그게 이거였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겹겹이 뭔가 겹쳐져있는 순간이 아니라 순수하게 몰두한, 단순한 단 하나의 경험을 하고 난 후 깨달음이 더 잘 온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오히려 매일 단순하자고 다짐한다. 해가 나면 웃고, 레모네이드가 맛있으면 기뻐하고,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시시덕거리며 더 이상한 농담을 만드는데 몰두하고, 집에 오는 길에 맥주로 꾸룩거리는 장을 움켜쥐고 빨리 걸어가는 이 모든 순간을, 딴 생각없이 단순히 하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가득 채운 순간으로 인생이 많이 지나갔을 때야, 그 사랑을 이해하게 됐다. 그 사람과 함께할 때는, 그 사람과 함께 있지 않은 모든 순간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여기에 있을 때가 아닌데, 지금 이 곳은 즐겁지 않은데 라는 생각을 계속 하곤 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사인이라는 걸 알 정도가 되었고, 그런 생각이 들 때에도 그 생각을 뿌리치고 내가 붙들고 있는 것들에 눈을 한 번 더 줄 사람은 되었다.

 

사랑이 아무리 아프더라도, 그것만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만져야, 우는 나를 발견하고 위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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