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름 Nov 29. 2023

일의 무서움과 나의 비합리적인 신념 - 1

오늘 아침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울 아빠는 참 경상도 남자답게, 딸이 흰머리가 나는 나이가 되도록 마음이 통하는 대화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가끔 술먹고 털어놓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아빠 인생이 참 기구해서 너무 깜짝 놀라고 또 마음이 안됐을 때가 있다. 들은 이야기 중 기억나는 하나는 아빠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출근을 한 날이었는데 - 아빠는 생산직 노동자다 - 출근한 곳이 안전장치도 제대로 안되어있고 너무 위험하고 커서, 너무 무서워서 그날 퇴근을 하고 어떻게 이런 곳에서 평생을 일하지 생각하며 엉엉 울었다는 것이다.


불쌍해. 너무 마음이 안됐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첫 직장에 출근했을 때 나도 너무 막막했다. 나는 인류학을 전공했는데, 처음 직장을 구한 곳은 엔지니어링 회사였다. 때는 스티브잡스가 검은 목폴라를 입고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을 어쩌고 하던 게 유행하던 때라, 서버 어쩌고 데이터베이스 어쩌고 하는 전공지식 하나없이 내가 뽑힐 수 있었다. 물론 뽑혔다는 것 만으로 나의 능력이 출중하다고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면 맘 편하고 좋았겠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여성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매일매일 출근길이 너무 무서웠다. 말그대로 무서워서 온 몸 근육이 다 경직될 정도였다. 월요일이 오는게 너무 무서워서 피부 발진이 생겼다. 큰 대학병원에까지 다녔는데 이유는 원인불명! 스트레스로 인한 발진이라고 했다. 광선치료를 거의 육개월 정도 받고서야 조금 좋아졌지만 아직도 잠을 못 자면 발진과 상처가 올라오는 만성 피부염이 되었다. 


나는 놀랍게도 이런부분에서 아빠의 딸이어서 무서운 일을 혼자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딱히 나만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일터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게 일 잘하는 모습으로 오인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체로 사회는 남성중심주의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회의 특징들을 정말 잘 내면화해서 큰 사람으로서, 감정이라는 게 내 맘속에도 존재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올해 상담을 잔뜩 받으며 알게된 사실 하나! 사실 나는 내내 무서워하면서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 팀장님을 만났는데, 이 분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게 나에겐 '부드러운 리더십'의 멋짐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약점을 솔직히 드러내면 상대는 나를 일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내면이 아주 단단해서 저정도는 드러내도 아무렇지 않나봐 라고 생각하게된다. 그리고 드러내고 나면 의외로 공포가 반감되고, 사람들은 의외로 잘 도와주고, 물어보면 또 잘 대답해준다.


그래서 혹시나 나도 언젠가 고칠 수 있을까봐 여기 까발려보는 나의 비합리적 신념은 다음과 같다.

  내가 일을 못한다는 것이 언젠간 들통날 것이다. (아님. 사실 난 대체로 꼼꼼하고 일도 무리없이 한다.. )

  내가 엔지니어링에 관심이 없는 것은 언젠가 들통날 것이다. (아님. 뭐 또 그렇게 엔지니어링에 별로 관심 없지도 않다...)

  내가 오로지 돈 때문에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젠가 들통날 것이다. (난 사실 돈 조금 줘도 재밌는 일 엄청 좋아한다 해외여행을 자주 보내준다는 이유로 월에 백이십만원 받으면서 일년 넘게 일한 적도 있다. 그리고 돈 때문에 일하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주지없는 사실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두려움은 내가 초년생때 첫 직장에서 전공 혹은 관심사와 전혀 관련없는 일터로 계속해서 출근하다보니 내가 잘 못하고 관심없는 일을 계속해야되는 날들이 지속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좀 부끄럽지만 학생때는 뭘 못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뭘 못할 것 같으면 애초에 시작을 안 했기 때문에 실패의 경험이 별로 없는 온실속 화초처럼 자랐던 것이다! 실패는 두려운데 남 눈은 무서워서, 직장 새내기 첫 해 동안에 모르는 걸 모른다고 당당히 말하고(뭐 모르는게 내 잘못도 아닌데) 열심히 배웠으면 좋았을텐데, 그 당시 나의 한 주는 대강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 주의 첫 날에 몇 가지 일을 분배받는다. 하나하나 미루다 보면 금요일까지 끝내야 하는 일을, 금요일에는 다른 사람들이 논다는 이유로 나도 느슨해져서 좀 놀고 (다른 사람들은 목요일까지 정상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좀 느슨하게 해도 괜찮은데 나는 정말 말그대로 하루에 한 시간도 일하지 않고 일하는 척 만하고 한 주를 다 보냈기 때문에 금요일에 놀면 안됨. 사실 ADHD인으로서 이제 알게 된 사실은, 금요일 오후가 일 제일 잘되는 시간이다. 도파민 수치가 평소 매우 낮은 사람은 마감의 공포와 긴장이 주는 추가 도파민이 있어야지만 일을 다른 사람들만큼 해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 금요일 다 지나지? 금요일 세시쯤 되면 샷다 내린다. 아 주말에 시간 많은데 그 때 보지 뭐, 하고 주말로 미룬다. 주말에 일하는 직장인 본 적이 있는가? 스티브 잡스 말고는 없을 것이다. 나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주말에 일하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에 아아직 시간 많은데 뭐 하고, 뒷간에서 나오는 사람의 마음이 되는 것을... 당신은 이미 이 메커니즘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요일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그러면 월요일이 오는 것이 너무 너무 무서워지고 마치 큰 늑대를 앞에 두고 벌벌 떠는 마음으로, 월요일이 그렇게 무서워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직장생활은 여러모로 끔찍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좀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운 지점은 이것이다. 나는 그 때 Fake it until make it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직장생활에 임했다. 그것은 그때까지 잘 통해오던 트릭이었다. 하지만 Fake it 까지만 하고 집에가면 드러눕고 하이볼 말아먹었다. 집에 가서 하이볼 안 말아먹고 좀 공부하려면 내가 일하는 필드에 대한 흥미가 있었어야 할 것인데, 나는 엔지니어링에 진짜로 관심이 없었다. 그럼 그 회사에 왜 갔느냐? 나는 한국을 떠나고 싶었고 엔지니어만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은 왜 떠나고 싶었느나? 해외에 살아보고 싶었다. 


해외에 살고 싶은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대체로 그 때까지 내가 만났던 한국사람들이 딱히 나와 비슷한 동류의 사람이거나 친구가 될 수 있는, 혹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사회 주류 분위기가 성차별이 만연하며 문제라고 인식도 되지않는 것도 힘들었다. 또 노동시간이 너무 길고, 일에 자아정체성이 그대로 투영되는 분위기도 나와 맞지 않았다. 내가 좀 더 무던한 사람이었다면 혹은 좀 더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사회풍조는 무시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예민한 성정에 그날 만나는 사람, 그날 한 좋은 대화가 나의 기분에 너무나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지금은 캐나다에 와 있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그 때 문제라고 느꼈던 것들은 거진 해결되었다고 느낀다. 

- 한국보다 짧은 노동시간 (한국보다 매일 2시간은 짧다, 그리고 직장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좋다) 

-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선진적이다. 성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있다.

-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에 별로 욕심이 없는 나도 외로움을 덜 느낀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일이 너무 괴로운 것인가? 일만 생각하면 뭔가 마음에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인가? 나라까지 바꿨는데 마음이 괴로운 것이라면! 논리적으로 힘들 이유를 제거했는데도 아직도 괴롭다면! 괴로운 이유는 내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말이다!


왜! 나는 일하기가 이렇게까지 괴로운가? 이유는 다음 글에 계속 . . .





작가의 이전글 수행자로서의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