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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Feb 08. 2024

"엄마, 나 자퇴하고 싶어요."



나는 어려서부터 순한 편이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돌 전 아가였던 나를 데리고 주일날 교회에 가면, 교회 성도들이 예쁘다며 나를 돌아가며 안아도 낯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후쯤 되어 누군가 나를 어머니에게 건네주면 그렇게 집에 갔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였다. 규모는 작지만 성도들 앞에서 모범을 보여야 했기에, 부모님은 "선하고 정직하게 살아라", "양보를 잘하는 것이 좋다"라고 가르쳤다. 다행히도 양보는 내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성도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내가 늘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나의 권리가 침해당할 때 의견을 표현하기'였다. 나의 경계가 침범당할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아니, 몫을 찾는다는 자체가 영 어색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이전까지는 친한 친구도 있고, 나름 명랑했던 아이였다. 문제는 14살이 되어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여자중학교에 배정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막 사춘기에 접어서는 민감한 여중생들 사이에서, 나는 학기 초부터 무리에 소속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렇게 혼자 동떨어진 나를 한 무리가 괴롭히기 시작했다.


신체폭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소위 '은따'였다. 내 물건을 빌려간 후에 돌려주지 않거나, 교과서 등을 몰래 숨겨놓거나, 모둠수업 시간에 내가 투명인간인 듯 자기들끼리만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런 일을 겪으니 막막했다. 하지만 이런 내 상황을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알리기 쉽지 않았다. 나는 '문제가 없는 아이'이고 싶었다.


"엄마, 나 자퇴하고 싶어요."


조심스럽게 내뱉은 말에, 어머니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끼며 열적게 말을 이었다. "지금 학교는 너무 멀고... 검정고시를 치면 대학도 빨리 갈 수 있으니까 더 좋고요. 돈도 덜 들고..."  괴롭힘 때문이 아니라 진취적인 미래 설정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당시 14살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었다.


그때 어머니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혼났던 것 같기는 하다. 자퇴를 하지 못하고 계속 학교를 다녔으니까... 나도 그 이후로 다시는 '자퇴'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소문은 끈질겨서,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뀌어도 나의 입지는 변하지 않았다. 학업이나 동아리 활동은 열심히 했지만, 반 교실 안에만 들어가면 나는 혼자였다. 그래도 나는 그 아이들을 미워하지 못했다. 대신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렸다. '3년 동안이나 이런 거면 나에게도 무슨 문제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형벌을 주듯 꾸역꾸역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 졸업식 날이 되었다.

나는 아쉬움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후련하고, 시원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외향적인 첫 아이를 키우면서 애를 먹다가 기질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첫 과제는 나의 기질을 검사하고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 과제를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스스로를 너무 몰랐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향적이고 조심성이 많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이를 표출하기보다는 억제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성향이다. 어머니 말에 대놓고 반항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 말대로 하지 않는 쪽을 택해서 은근히 속을 썩이는 아이였다. 하지만 밖에서는 최대한 나를 억눌렀다. '착한 아이', '민폐 끼치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이게 성격으로 굳어지다 보니, 나는 정말 스스로를 '화가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육아를 시작하면서 이 자기 개념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첫 아이는 드러내고 표현하는 성향이다. 마음껏 매달리고 요구하는 아이를 보면서 내면에서 '나는 그렇게 못했는데...'라는 억울함이 들면서도,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죄책감을 가지곤 했다.


내가 가진 기질과, 환경을 통해 형성된 성격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나니 비로소 개선점이 보였다. 내가 원래 화가 없거나 그런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생각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기질적으로 조금 더 어려웠던 것뿐이었다. 타고난 건 바꿀 수 없지만, 앞으로 그걸 보완하고 연습할 기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좀 더 솔직해지려고 노력한다. 부모님에게도,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연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중학교 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어머니에게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참으라고만 가르쳐주지 말걸, 그때는 그게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그랬던 건데..."라고 미안해하셨다. 어머니의 그 반응에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풀어졌다.


사실 내가 자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혼내기는 했어도, 내게 무슨 일이 있을 거라는 건 눈치채셨다고 한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과 면담도 했다(나도 이건 몰랐었다). 하지만 사립학교에서 오래 근무했던 선생님은 유쾌하게 "00이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주 모범생이에요."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입을 닫고 있고, 선생님은 문제가 없다고 하니... 어머니가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자퇴 발언'이 허무하게 기각된 이후, 나는 내심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었다. 부모님이 나의 힘듦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렴."이라고 따뜻하게 말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지금, 나는 그 사건을 부모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버렸지만, 어찌 보면 부모님이 나를 도울 기회를 차단한 셈이기도 했다. '날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어요.'라는 핵심은 쏙 빼놓고 "자퇴하고 싶다"는 말만 폭탄처럼 던졌으니 당시의 부모님으로서는 받아들이기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다. 부모는 독심술사도, 탐정도 아니다. 그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력할 뿐이다.






부모님에게 감사한 점도 있다. 그중 하나는 수줍음이 많고 긴장을 잘하던 내게 "그래도 너는 실전에 강한 아이야! 막상 올라가면 엄청 잘하잖아."라고 격려해 주었던 것이다. 큰 무대에 올라가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설 때 그러한 부모님의 응원은 마치 등 뒤를 누가 받쳐주고 있는 것처럼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의 타고난 기질을 조율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을 선물해 주신 셈이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나도 내 아이의 등을 밀어줄 차례가 되었다. 이 아이도 언젠가 충격적인 말과 행동으로 나를 놀라게 할 때도 있을까? 그럼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하고 놀라서 말릴까, 아니면 아이의 진짜 마음을 캐치하고 지지해 줄 수 있을까? 아직은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저 바람이 있다면, 완벽한 부모는 되지 못하더라도 아이의 마음에 단단한 보석을 쥐어줄 수 있는 부모이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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