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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Feb 22. 2024

나는 소망한다, 고위험 임부에게 금지된 것을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폴 엘뤼아르가 쓴 시 <커브>의 전문이다. 이 간결하지만 도발적인 시는 국내 작가의 한 소설 제목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기도 하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에는 큰 감흥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게 금지된 것에 큰 소망을 품지 않고 살아왔다. 고작해야 목회자의 자녀로 살면서 술, 담배, 외박, 뭐 이런 것 정도였을까? 그마저도 내겐 크게 궁금하거나 절실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건 아마 큰 자극을 좋아하지 않고 집에서 가만히 누워 책을 읽거나 꼼지락대는 것으로 만족하는 나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나조차도 답답함을 느끼던 시기가 있었는데,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조산기로 출산 전까지 누워있던 10주 남짓의 시간이었다. 그 시기를 보내며 나는 '사람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처음에는 '누워있기만 하는 거면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어려웠다. 임신으로 위장이 명치께로 올라온 상황에서 밥을 먹고 바로 눕자니 곤욕스러웠다. 통목욕은 고사하고 샤워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후다닥 씻고 나와야 했다. 원래의 내가 유지하던 '일상'이 제한받는 경험을 하니 우울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내가 조심하지 않으면 아이도 위험하다'는 불안감이었다. 고위험 임부들이 모인 병동에서 자리가 나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이다. 자궁수축이 잡히거나 막달까지 버텨서 퇴원하거나, 결국 그렇지 못하거나... 장기입원이 결정되면서 1인실에서 다인실로 자리를 옮겼는데, 알고 보니 한 임부가 사산 후 퇴원을 하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와 주수도 똑같았다. 마음이 아렸다.


다행히 첫째는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둘째를 낳는 게 좋을지 오랫동안 망설였다. 첫째 임신에서의 기억으로 계속 마음 졸일 것만 같았다. 나도 나지만, 혹시나 둘째를 더 빨리 낳아서 아이가 잘못된다면?


다행히 이런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둘째는 첫째 때 비해서는 큰 이벤트 없이 잘 지나가고 있다. 예방맥수술을 받아 조산기를 좀 피해보려고 했는데, '임신중독증 고위험군'이라는 복병을 만나 이번에도 꼼짝없이 '고위험 임부'가 되었다. 그래도 여러 예방책들을 동원하고 있고, 혈압도 꼬박꼬박 재면서 조심하고 있다.


둘째 임신 후 살얼음을 걷는 기분으로 한 주 한 주를 보냈는데, 어느덧 32주를 지나고 있다. 한 달 정도만 기다리면, 예방맥수술을 했던 곳의 실을 풀고 자연 진통이 찾아오기를 기대할 수 있다.






둘째 임신 기간을 지나면서 몇 가지 못하게 된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일'이다. 예전에 치료실에서 만삭 때까지 일을 하고 육아휴직에 들어가신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께 직접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내심 건강하게 일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멋있게 보였다(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도 나름의 고충이 많으셨을 텐데!). 그러나 '고위험 임부'에게는 일이 무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임신 후 오프라인 출근을 그만두었다. 아쉽긴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테니까.


'여행'도 '소망하나 금지된 것' 중 하나이다. 첫째 아이 임신 후, 조산기로 눕기 전에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아이에게 "네가 뱃속에 있을 때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갔었어~"라고 말해줬더니, 비행기를 타고 또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고 말을 했다. 예방맥수술을 하고 컨디션이 좋으면 여행도 있지 않을까? 하고 약간 기대를 가지긴 했지만, 몸의 컨디션이 비행기를 타고 여러 장소를 이동할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포기했다.   





첫째 때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자꾸 곱씹으며 우울해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름 경력직이라고,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계속 시도해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얼마 전에 종료된 <MBTI보다 흥미로운 기질의 세계> 연재 브런치북이었다. 온라인 교육을 원 없이 듣고 자격증 취득도 했다. 비록 음울했던 코로나 팬데믹이었지만, 그 영향으로 온라인 세계가 넓어진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 무슨 대단한 모성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내게 어떤 우여곡절이 있어도 결국 '아이가 괜찮으면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둘째의 임신은 첫째 때 느꼈던 불안감을 다시 재정의하는 시간이다.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잘 지내고 있다.'라고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불안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채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렇게 '소망'의 끝에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배우고 있다.


내일, 나는 지금까지 금지되었던 것에 도전한다.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리는 기질부모교육전문가 1급 오프라인 교육을 들으러 간다. 몸상태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었다. 남편이 연차를 내어 이동을 도와주기로 했지만, 2시간 동안 앉아 교육을 수강하고 다시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복귀하는 긴 여정이 될 것이다.


부디 나에게도, 뱃속 둘째에게도 좋은 시간이 되길... 그러기 위해서 일단 이 글을 발행하고 좀 누워서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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