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322] 전주국제영화제 출품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당신은 믿지 않을 것이다. 소년들이 길을 걷다 천사를 만났다는 걸, 그 천사가 다가와 소년들의 어깨를 물어뜯었다는 걸.
당신은 믿지 않을 것이다. 삶이 고달픈 여자가 다리 위에 섰을 때 난간 위에 천사가 날아와 앉았다는 걸, 잠시 앉았던 천사가 날개깃털 하나 떨구고 사라졌다는 걸, 그 천사가 털복숭이 못생긴 남자였다는 것을.
어떻게 계속 규모를 키워가며 후속작을 내고 있는지 믿기 어려운 이시이 유야의 신작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은 천사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천사를 본 사실을 가슴 속에 꽁꽁 감춰두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얘기다.
가난한 일본 소설가와 무명 한국 가수
이제는 이시이 유야의 페르소나라 해도 좋을 이케마츠 소스케는 이번에도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성실한 사내다.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에서 공사장 인부로 일하며 틈틈이 책을 읽던 사내를 연기한 그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에선 직업을 찾아 한국으로 건너온 무명 소설가가 되었다.
그런 그가 직업을 밝히자 최희서가 연기한 무명 가수 솔은 대뜸 "그럼 가난하겠네요"하고 묻는다. 소설가는, 글을 쓰는 사내는, 순박하고 선한 이들은 대개 가난한 것인가.
영화의 시작에서 츠요시는 어린 아들과 함께 서울로 건너온다. 인천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 시내까지 3만8000원, 그러고도 한참을 더 가서 짜증을 내는 택시기사에게 쫓기듯 내린다. 서울이란 각박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늘 바쁘고 화가 나 있다.
그 모든 짜증과 화와 무시 앞에서 츠요시는 아들에게 말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해."
고단한 삶 가운데 교차하는 사람들
츠요시가 서울에 온 건 사촌형(오다기리 죠 분)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이다. 형은 한국 동업자와 함께 화장품 도매업을 하려 하는데 말이 도매업이지 물건을 대량으로 사서 일본으로 밀수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마저도 일이 계획처럼 풀리지 않아 츠요시의 사정은 갈수록 안 좋아진다.
츠요시는 우연히 솔을 만난다. 도매상에게 화장품을 사러 들른 쇼핑몰에서 솔이 그렇고 그런 노래를 부른다. 시장 사람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간이무대에서, 그마저도 노래 중간에 쇼핑몰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민망한 상황이 이어진다. 츠요시는 솔을 바라보고, 솔도 자신을 바라보는 츠요시를 본다.
둘은 공연이 끝난 뒤 시장 음식점에서 다시 만난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솔은 소주를 마시며 눈물을 흘린다. 그런 솔을 츠요시가 지켜본다.
영화는 츠요시와 어린 아들과 사촌형, 솔과 솔의 오빠와 여동생이 어울리지 않는 동행을 하는 과정을 그린다. 츠요시는 사촌형이 이끄는 강릉으로, 솔은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가는데, 어찌어찌 하다가 함께 묵호역에 내려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인연과 동행이지만 관객으로선 따라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인과 한국인 가족, 서로 친하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이들 가족이 함께 솔이네 부모님의 산소를 찾고, 솔이네 고모님의 집에 들르고, 바다를 본다.
제작진은 이 영화를 가리켜 두 가족이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모색하는 일종의 휴먼드라마라고 홍보했다는데, 보고 있자면 정말로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이들이 한 울타리 안에 들어와서는 느슨한 울타리 안에 한 데 묶이는 순간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만나고 대화하고 겪어내며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인가.
이시이 유야 영화들에서 느껴지는 순박함과 답답함은 신작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특히 천사를 목격한 솔이가 천사에게 외치는 일련의 대사들은 감독의 주제의식을 관객에게 그대로 읊어주는 것처럼 촌스럽고 거북하다. 좀 더 세련되고 은근해도 좋으련만, 섬세하지 못해 용감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이 선택이 지난 작품들에서와 같이 영화를 실망스럽게 한다.
이시이 유야 작품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언제나 순박하고 정이 넘친다. 성공하진 못했지만 성실하고 솔직하다. 악역은 언제고 세련되며 이기적이다. 돈이 많고 잘 나가지만 저보다 못한 인간들을 함부로 대한다. 그의 시선이 아예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가끔은 세상이 그보다는 복잡하지 않은가 싶다.
여전히 순박한 이시이 유야와 한국의 만남
천사를 만난 솔이와 츠요시의 삶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굳이 천사를 등장시킨 이시이 유야의 선택도. 이들의 고달픈 삶을 구하지 못하는 천사라면, 버겁고 지루한 영화 역시 구할 수는 없을 텐데. 때로는 착하고 지루한 영화보다 못되고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고 싶다.
전작들보다 나아진 것이 없어 실망스럽지만 성과가 아예 없지는 않다. 영화 전체를 한국에서 찍었고, 한일 두 나라 스태프, 역시 두 나라 배우들이 함께 협업해 색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익숙한 공간에서 우리가 아는 장소들을 찍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생경한 인상을 주는 건 이방인의 시선이 투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영화가 흔치는 않지 않은가.
불신이 깔린 제목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은 관객에 대한 도발이기도 하다. 이시이 유야는 관객에게 웅변한다. 나는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답하고 싶어질 것이다. 믿음이 가는 얘기라면 언제고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