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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Jan 15. 2024

와인은 별로

단상

와인 좋아하는 사람 어때? 하고 묻길래 취향이지 답했다. 그래도 꼬치꼬치 캐물어서 나랑은 안 맞는 편이라 했다. 왜냐고 또 묻길래 와인의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사며, 다시 포도밭부터 발효와 숙성에 이르는 공법을 이야기하려다가 어차피 그런 얘기에 관심이 있으면 소주나 위스키를 마시겠지 하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와인쟁이들과는, 여기서 와인쟁이라 하면 위스키 가격의 와인들로 넘어가버린 고급스런 이들을 말함인데, 잘 대작을 하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이야기는 하더라도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그에 준하는 생활, 이를테면 운동이나 삶을 나누는 일따위는 잘 하지 않는 것이다.


 면전에서 말하긴 그러하니 글로써 적자면 여러 이유가 있는 것인데, 그중 한 가지는 와인은 품질에 있어 풍미가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위스키 역시 풍미는 있다지만 그 세기와 종류가 다소 한정적이고 대신 선명한데 반하여 와인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고 그 다양성에 강점을 둔 술이라 하겠다. 풍미란 단순한 후각을 넘어 비강을 통해 들어온 공기며 거기에 섞인 냄새가 맛과 섞이는 방식, 또한 뇌를 자극하는 수많은 가능성들을 포괄한다. 때로는 기억을 일으키고 또 때로는 상상을 자극하며 다섯가지 맛의 종류와 결합하며 수많은 결과물을 내어놓는다. 풍미의 근간은 후각이며 또 다채로운 감각을 느끼고 기억하여 다채롭게 재조합하는 역량에 달린 것이다. 그러므로 와인을 즐기는 이는 섬세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이를 왜 가까이 두지 않는가. 대저 섬세한 것들이란, 그것이 감정적이든 감각적이든 이성적이든 간에 불편한 족속들이다. 가족이며 친구며 동료며 룸메이트든 간에 어느 면이든 나보다 훨씬 섬세한 이와 가까이 해보았다면 안다. 훨씬 섬세한 이는 그렇지 않은 이에게 스트레스를 안길 밖에 없다. 그만한 매력이라도 갖췄다면 얼마간 감당이라도 하겠으나 별반 내세울 것 없이 섬세하기만 한 이는 얼마나 짜증스러운가 말이다.


 심지어는 인간이란 자주 난 대로 생각하고 살아가게 마련이어서 이 같은 이들이란 지식이며 사상, 가치관이며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주고받게 마련이다. 아주 많은 사례들이 있기는 하다만 나는 성차별적 애주가여서 매력적인 여성을 앞에 두고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떠들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나는 와인은 잘 안 맞아서 하고 넘어가는 것이니 나의 와인이란 토르의 부하들이 마시듯 1.5리터 팩에 잔뜩 든 맥주보다 못한 승리의 포도 발효 술에 불과한 것이다. 우아우아 소리 내며 뿔잔에 잔뜩 따라 마실 것 아니라면 내 돈 내고 비싼 와인은 못마신다 그런 말이다.



2023. 4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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