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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야 Jul 13. 2022

한국을 떠나 노르웨이로✈️

코로나 시국 속 국제 커플의 현실


때는 2018년, 수년간 망설임의 끝에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던 20대 중반의 나이가 무겁게 느껴졌다.

비행기 안 주변 사람들은 모두 여행으로 들뜬 듯 보였지만 나는 불안했고 초조했다.


사실 로마로 떠나는 당일,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를 배웅해주던 눈시울이 붉어진 엄마의 얼굴을 보며 울고, 마지막으로 언니와 인천공항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울고, 내가 그렇게 가고자 했던 나라인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렇게 퉁퉁 부은 눈과 함께 로마로 향하던 비행기 안,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나의 창가 좌석을 비췄다.  


종교가 없는 내가 로마로 다다르는 그 비행기 안에서 눈을 꼭 감은 채 '이탈리아에서 사랑, 직장, 명성 이 셋 중에 하나만이라도 만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며 밝게 떠오른 해를 향해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을 향해 기도했다.


운이 좋게도 신은 내 얘기를 듣고 있었던 걸까? 이래서 사람은 한치의 앞날을 모른다고 하는 건가?


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노르웨이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우리는 2년 가까이 장거리 연애를 이어갔다.


그러던 와중 코로나가 터졌고 노르웨이로 그를 만나러 여행을 앞둔  , 갑작스레 노르웨이 총리가 코로나로 여행객 입국을 금지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한창 중국에서 코로나가 난리였고 한국에서도 스멀스멀 폭발적인 감염이 진행될 때라 내가 비행  코로나에 감염되면 남편에게뿐만 아니라 남편 가족, 지인들에게도 민폐가 될까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엄격한 규칙이 적용될 수도 있기에 수천번의 고심 끝에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게 됐다.


국제 커플의 현실을 실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 슬프고 불안했지만 우리는 6개월 이상을 8시간 시차를 극복하며 카카오톡, 영상 통화로 사랑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장기간 보지 못하는 현실에 너무 힘들어했고 우리는 논의 끝에 미래의 결혼 계획을 앞당기기로 했다. 사실 코로나로 모든 행정 업무가 딜레이 되고 있었기에 결혼을 신청한다고 해도 빠른 시일 내에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또한 국제결혼은 준비해야 할 서류도 있고 또 입증해야 할 서류, 공증받아야 할 서류뿐만 아니라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그는 결혼 비자 신청 후 오래 걸리는 것을 더 걱정하고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나!, 일단 해보자. 어찌 됐건 오래 걸리는 일이면 하루라도 빨리 준비해서 서류 제출하는 게 좋지! 그리고 코로나가 아녔어도 우리가 결혼하려면 이 과정은 어쨌거나 거쳐야 되는 부분이야!'라며 마음을 다잡고 각자 양가 가족들에게 결혼 계획을 알렸고 양가의 동의 하에 결혼 준비를 했다.


“위기 속에 기회는 있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내야 할 서류들을 다 준비해서 제출하고 한숨을 돌리고 있던 찰나에, 우리 커플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인과 국제 연애를 하고 있는 다른 커플들도 노르웨이 정부의 '외국인 입국 금지'에 불만을 갖고 항의를 엄청 했는지 갑작스레 연인들에게 입국을 허용해줘서, 비자 신청 결과를 기다리던 와중 그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그와 재회한 이후, 난 한국에 다시 돌아와 자가격리 후 결혼 자금을 모으고자 일에 몰두했고 비자 신청한 지 5-6개월쯤이 되던 2020년 12월 초 무렵, 갑작스레 노르웨이 이민국에서 '승인'됐다는 메일을 받았다!  


1년 가까이 걸릴까 봐 걱정했는 데 생각보다 빨리 나와서 너무 기뻐 이리저리 전화하며 소식을 알리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난 2021년 4월 노르웨이행 비행기를 끊었고 약 3개월 간 결혼 준비 및 코로나로 인해 언제 다시 만날 지 모르는 한국 가족들,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4월이 다가오고 인천 공항에서 눈물을 흘리며 코로나 조심하고 다시 만나는 날까지 건강히 잘 지내라며 가족들과의 포옹을 마지막으로 나의 고국인 한국을 떠나 도착한 노르웨이.


거리가 먼 만큼 달라도 너무 다른 문화, 언어, 생활환경에서 아등바등했던 내가 어느덧 노르웨이에 거주한 지 1년 4개월이나 됐다.


코로나는 그때보다 잠잠해졌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고 시간은 그때와 다를 것 없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1년 4개월이란 시간 속, 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새롭고 알 수 없는 문화에 점점 익숙해져 갔고 노르웨이에서 사는 한국인이자 외국인으로서 두려움에 빠지기도 했으며 종종 달짝지근한 기쁨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그동안 내가 노르웨이에서 살면서 느꼈던 부분들, 개인적인 성장의 기회가 됐었던 에피소드들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과 그리고 나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어요!라고 알리고 싶은 나의 나대는 마음을 꾹꾹 눌러왔던 지난날들을 글로 작성하고자 첫 발걸음을 브런치에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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