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 휴가를 갔다 왔다. 일에 벗어난 그 자유로움이 얼마나 좋았던가. 일주일이 단 하루 같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지만 내 매니저에게는 내가 휴가를 떠난 일주일이 가장 바빴던 주가 돼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돌아온 나에게 시큰둥한 목소리로 Welcome back이라고 말한 뒤, 휴가는 어땠는지에 대해 전혀 묻지 않았고, 반가움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아울러 내가 휴가를 떠나기 전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기분이 상할 일들이 몇 차례 있었다.
서로 말은 대놓고 안 하지만 '나 감정 상했어'라는 분위기를 서로에게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에피소드에 언급했듯 이직을 마음먹었기에 사실상 그러든가 말든가 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아니 그냥 솔직히 말해, 일을 같이 하기 불편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이 매니저를 따를 수도 없고 또 이 매니저의 매니징 스타일을 배우고 싶지 않다.
더불어, 어시스턴트 매니저로 있으면서 한 번도 나의 매니저(보스)가 나를 커버해주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나에게 불평하고 따지는 듯한 태도가 전반적으로 있었고, 나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배울 점 없는 상사에게 굳이 아부 떨고 싶지도 않았다.
노르웨이 직장 생활에서 직장 상사에게 아부 떠는 것도 없기도 하기에 내가 이 사람한테 잘 보일 이유도 없고 또 이 사람도 나한테 잘 보일 이유는 없다.
예전 직장 동료가 인간관계로 고민 중이던 나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하고 다 친구가 되길 바랄 필요 없어. 모든 사람하고 친구가 되지 않아도 돼."
여하튼 우리가 팀이 된 이례로 매니징 포지션에 있는 우리 둘이서만의 미팅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서로 의사소통이 더 안 되는 것 같았기에 나도 휴가 다녀와서 정식 미팅을 요청할 참이었는 데, 우리가 서로에게 감정 상했다는 것을 매니저도 인지했는지 휴가 떠나기 하루 전날, 나에게 휴가 다녀오면 정식으로 미팅하자고 말했다.
그리하여 휴가에서 돌아온 당일, 매니저와 나는 미팅을 진행했다.
하지만, 역시 나의 말을 끝까지 안 듣고 판단한다거나 초치기 일수였다. 예로 나는 팀원들을 능력을 고루 끌어올리고 싶다고 운을 떼자, 매니저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말을 자르면 '미안한데 그건 너의 기대일 뿐이고, 자기가 이미 해봤는 데 결과는 No라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엉망으로 만든 일을 뒤처리하는 일은 너의 일(매니저)이다.' 이런 식의 태도를 보였다.
이어, "모두들 나한테 너무 의지하고 있어!"라며 자신이 팀에서 혼자 모든 걸 다 떠 맞고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뉘앙스를 떨쳤고,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음.."이라고 대답했다.
내 마음에서는 "너한테 의지를? 사람들이 너한테 의지를 한다면 지금 스트레스받으면서 일을 할까? 아니면 일하는 게 신나서 서로 으쌰으쌰 할까?"라고 묻고 싶다며 아우성을 쳐댔다.
난 이 매니저가 팀을 뒤에서 받치고 있다는 느낌을 전. 혀. 못 받고 있다. 그리고 저번에도 «너네는 내가 있어서 행운»이라고 언급한 것과 더불어 자꾸 자기가 여기서 제일 베스트란 걸 은연중 주장하는 것도 불편했다. 타인이 인정해 주길 바라는 욕구 때문인 건 지 자꾸 그래 네가 최고야라는 말을 유도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하지만 나는 매니저 역할은 결국 팀원들이 성장하게 도와줘서 일을 함께 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었고, 이 친구는 그저 관리감독하는 역을 하고 싶어 하는 듯 해 우리의 대화의 접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울러, 다른 신입이 내가 휴가 간 사이에 점장에게 불만을 토로했는데 그 신입의 태도를 비평하며 태도 문제가 있다고 연신 얘기하기 시작했다.
즉, 이 매니저는 자기 말에 토 달면 상대방의 태도가 이상하다 비평을 하고 자기를 뒤돌아보진 않는 타입이다.
더군다나 5월부터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된 이례로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업무 환경은 어떤지, 자기가 서포트해 줄 부분은 없는지 물어볼 줄 알았으나 일절 없었다. 아마 좋은 소리 안 나올 줄 알고 질문 안 한 것이라 짐작하기도 했다.
우리의 한 시간 반 미팅은 이리저리 산으로 갔다가 결국 풀리지 않는 갈증을 여전히 남긴 채 끝이 났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같이 근무를 하다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퉁명스럽게 반응해 나도 무표정으로 답하고 일했더니, 이후 조금씩 살가워졌다. 그리고 일주일 새 무슨 일이 생긴 지 모르겠지만 그전에 계속 일 못한다고 욕하던 직원을 엄청 잘한다고 칭찬했다.
나도 인정 욕구가 있는 사람인지라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매니저가 불평하는 타깃이 내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좋은 업무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기에 오늘 같이 일하면서 불안감과 긴장감이 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고 내가 내 인생을 내 업무를 이 사람한테 인정받는 것보다 나 자신한테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상기시키며 불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이 사람한테 인정받고 안 받고 내 인생이 좌우되지 않는다. 물론 일하는 게 더 즐거울 수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 힘, 내 능력으로 여기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 부분을 최대한 끌어드리지 않고 공과 사를 구분하기로 했다. 사적인 감정은 접어두고 공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하고 같이 논의할 부분은 논의하던가 아니면 그 매니저가 팀에 대한 온전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에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의 의견에서 나름의 합의점을 끌어내던가 따라가던가 하면 그만인 것이다.
잠깐 다시 미팅 얘기로 돌아가자면, 휴가를 앞둔 매니저는 나에게 "내가 자리 비운 동안, 네가 나를 대신할 텐데 준비 됐어?"라고 물었고 나는 "응 그럼. 너 휴가 가기 2주 전부터 너 업무 파악하면 그만이지."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얘도 하는 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뭐 있겠나 싶었다. 간단히 말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처음에는 서툴지만, 경험을 쌓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그 자리의 전문가 또는 숙련자가 되는 거라 굳이 겁먹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저, 나는 지금 경험이 필요한 거지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규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은 배움이 되고 성장이 되는 거니 지금 이 직장 내에서의 경험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보면 나를 성장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거라 믿는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종종 불안하고 걱정이 다가오는 데 글쓰기는 그러한 나의 휘청이는 마음에 마치 손을 잡아주는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