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대학원 시절 조교생활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때 학부생들이 근로학생으로 와서 심부름을 하곤 했었다. 그 중 어떤 한 학생이 틈만 나면 아주 두꺼운 책을 꺼내어 붙들고 있곤 했는데 어찌나 재미있게 틈만나면 읽던지 도대체 무슨 책이니?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였다. 아마도 영화로 본 사람은 많아도 책을 직접 읽은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영화 자체도 세시간이 넘고, 원작은 꽤 방대하기 때문이다.
나도 함 읽어봐야지 하고는 세월만 흘러 20여 년이 지났다. 여기 캐나다에 와서 만난 이웃의 딸이 영문과에 들어갔는데, 그 딸래미가 좋아하는 소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고 했다. 흠... 그 말을 듣고는 또 몇 년이 흘러, 이제 드디어 그 책을 읽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스칼렛과 애슐리, 레트 버틀러 등의 삼각 관계가 막장 드라마 못지 않게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펼쳐 지는 것도 이 책을 이끌어가는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한 축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당시의 시대 상황과 역사적 사건들도 관심을 끌어 당긴다.
책 앞 부분의 간략한 해설에는 이 소설이 철저한 미국 남부인의 시선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쓰여져 있다.아마도 남부 백인 노예주, 농장주들의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리라. 감안하고 봐야 하겠지만,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아... 이럴 수도 있었겠구나... 하며 읽는다. 에이브라함 링컨을 위시한 북군은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승리의 위인들이고, 남부 미국인들은 흑인을 노예로 부려 먹는 악덕 지주들이었다는 생각은 매우 단순한 일반화일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
그렇다면 실제 그 당시의 남부 백인과 흑인의 삶은 어땠을까. 남부 흑인들에게 노예 해방은 어떤 의미였을까. 남부 백인들에게 흑인은 어떤 존재였을까. 궁금했다. 물론, 노예제도는 폐지되어야 할 악한 제도인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든 역사의 사건들이 그렇듯 그렇게 단순한 몇 줄의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 과정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삶의 모양들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북부인들이 노예를 해방시켰지만, 그 속에는 흑인을 싫어하고 경멸하며 차별하는 북부 양키들도 있었고, 비록 흑인을 노예로 부렸지만, 오히려 가족처럼 사랑하고 존중하며 대해 왔던 남부인들도 엄연히 존재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칼렛이 사랑한 애슐리와, 남부 백인들이 KKK단에 들어가 테러하듯 흑인들을 처단하려 시도한 그런 부분들은 참, 아무리 남부 작가의 시선이고 1930년대의 관점이지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내가 잘못 읽었나 싶어서 몇 번이고 확인하며 읽었지만 작가가 그런 백인들의 처신을 미화한 흔적은 있어도 비난의 눈초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작가 인식이 아마도 철저히 남부인의 입장과 관점으로 쓰여진 부분이라고 비판 받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은 나에게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추천했다.
거기에는 미국 민중들의 삶에 대한 역사가 오롯이 쓰여져 있으니 보다 객관적인 기층민들의 삶을 볼 수 있을 거 같다면서.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 전에 영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다시 보고 싶다. 내가 상상했던 부분들이 어떻게 시각화 되는지도 좀 보면서 실망도 좀 하고 말이다. 물론, 스칼렛을 연기한 비비안 리의 곱고 교만한 자태와 레트 버틀러를 연기한 클라크 케이블의 능글맞은 연기는 큰 실망을 시키지 않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