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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Jul 31. 2024

나이 듦의 자각...은퇴를 생각했다

감정일기(6)

#1. 아버지 이야기 

은퇴 후. 직장 생활도 가족에게도 더없이 최선을 다했던 아버지는. 더 활기차게 지내셨다. 여행도 가고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블로그도 하고 운동도 꾸준히.. '나의 은퇴 롤모델'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다. 은퇴라는 게 저렇게 멋진 거구나. 이른 은퇴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건강을 챙겨가며 여유 있게 하고 싶었다. 은퇴 이후 할 일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갑자기 늙어버리셨다. 자신의 굴로 숨어버리셨다. 

운동을 하다 좀 다치셨던 거 같은데. 집에만 계시려고 했다. 운전도 피하셨다. 활동반경이 급격히 줄었다. 좋아하던 취미 활동도 하지 않으셨다. 입맛이 없다고 하셨다. 힘든 얘기를 가족에게 하시는 편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를 알기가 어려웠다. 몸이 아픈 건 잠깐이었는데 마음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처방받은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드시고 잠이 드셨다. 상담을 받아보시자고 해도 고집을 피우시는 거라..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2. 딸의 이야기

치열하게 살았다. 일상의 대부분을 일을 하고, 일만 생각하며 지내던 나는. 갑작스럽게 좀 덜 바쁜, 덜 주목받는 부서로 오게 됐다. 처음엔 참 좋았다. 요가 지도자 과정을 하고, 명상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일의 비중을 이렇게 확 줄이는 것이. 이렇게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구나. 나를 살필 여유,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 


낮시간대 거리, 지하철, 도서관...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도 알게 됐다. 나이 드신 분들과 마주칠 일이 많았다. 그분들이 소일을 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은퇴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나는 그냥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새로운 챕터의 시작인데(혹은 저물어가는 석양의 모습인데), 더 이상 젊지 않은 상태에서의 고군분투. 신체적, 감정적 안정상태를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겹쳐지는 나이 듦에 대한 무력감.이 먼저 왔다. 지금, 괜찮은 걸까.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조금이라도 젊을 때 제2의 인생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아버지는 왜 좀 더 힘을 내시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좀 알 것도 같다. 갑자기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무력감은. 방법을 찾기 어려운 무력감은. 나이 듦의 자각과 함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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