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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Nov 06. 2024

이 지독한, 나의 업...

감정일기(8)

일이란 뭘까. 시간을 거슬러 생각해 보면. 나는 모범생이었고.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을 나왔고. 운 좋게도 졸업 전에 취업이 됐다. 그럭저럭 알만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시작은 선배들보다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하기 시작했는데. 뻔뻔하지 못하여 나의 부족을 더 크게 느꼈는데. 그게 결국 나를 성장하게 했다. 나라는 인격체를 형성하는데 일의 작용이 컸다. 그저 순진한 세상물정 모르는 학생이 아니라, 이제는 사람을 설득할 줄 알고 내 주장을 내걸어 맞서기도 하는, 그런 직장인이 됐다. 선배와 후배 사이에 끼여, 낀 세대로서의 고충이 크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이제는 깨닫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 지독한 고통. 무례하고 불성실하며 무능한 후배와, 무례하며 불성실하며 무능한 선배 사이. 내가 맞고, 내가 당위임에도 그럭저럭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의 강을 지나면서. 이제는 삭일줄도, 굽힐 줄도, 외면할 줄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나는 평가를 받고, 내 스스로가 무례하거나 불성실하거나 무능한 것은 아니었다는, 일부 타인의 평가 혹은 자위만으로도 회사를 버티며 다닐 수도 있게 됐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 할 일이 많지 않은 부서에 있어본 적이 있다. 개인 시간이 늘어나면 당장은 몸이 편하고 스트레스가 줄지만 성취감이 적다. 즐겁지가 않다. 소소하게 성취의 영역을 늘려나가기 위해, 일을 만들어서 하기도 한다. 직장생활이란 어쩌면 "나를 알아주세요"의 연속일 거다. 제가 아직은 이렇게 쓸모가 많답니다. 이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저는 더 인정받고 조금 더 보람을 느낄만한, 어울려 일하는 즐거움을 찾을만한 곳으로 갈 거랍니다. 그런 일이 제게 어울리지요. 같은. 희망을 품고 지금을 버티는 걸 거다. 그리고 또 안다. 사실 지나고 보면 지금의 업무가, 지금의 동료가, 지금의 직장이...어떤 면에서는 꽤 만족스러운 곳이었다는 생각에도 미친다는 것을. 지금의 내가 과거의 어떤 고난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왜 행복하지 아니한가.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고 있고. 기회가 주어진 이 시점에. 나는 늘 그렇듯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데. 이 지독한 나의 업..을 어떻게 놓아버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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