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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윈디 Apr 04. 2023

프롤로그, 퍼스널 브랜딩 구축을 결심하게 된 계기

<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타성에 젖은 사람만 있을뿐이다. >

 2023년 3월 1일, 공식적인 백수로 거듭났다. 누구나 그렇듯 퇴사를 한 후, 나를 통제할 시·공간적 환경설정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퇴사 두 달 전, 마음 한 켠엔 일을 마무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후련함과 일을 끝맺고 나서 ‘어떤 방향으로 새로운 시동을 걸 준비를 해야 하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동시에 싹트기 시작했다. 자유의지만으론 나의 타성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기에 스스로에게 환경적 제약의 필요성을 느꼈다. 퇴사를 준비하는 사람, 나도 퍼스널 브랜딩에 도전해볼까? 고민 중인 사람, 나는 꿈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불안하고, 우울감이 많은 성격을 가진 사람 중 한 분이라도 내 글이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과 감사함을 느낄 것 같다.      

    

 필자는 대학교 입학 후, 졸업까지 취업이라는 목표만 바라봤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찾아 움직였고, 우울·불안이 높은 내향적인 성격 탓에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취업 성공을 이루기 위해 혼자 달려왔던 것 같다. 20살 때의 나는 ‘이제부터 나 혼자 독립해서 생활해야 해. 내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해. 다른 사람한테 기대선 안돼.’라고 생각하며 ‘독립’에 정의를 잘못 내린 채 엉뚱한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독립’에 정의를 잘못 내렸음을 대학교 졸업할 때쯤 알게 되었고, 혼자 고군분투한 시간들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다. 힘들거나 고민이 되는 일이 있으면 주변에 이야기하기보다 꾹꾹 마음 속에 눌러 담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조차도 걷잡을 수 없을 때가 돼서야 울퉁불퉁해진 감정이 밖으로 삐져나와 엉엉 울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본래 사람이라는 게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건데 왜 나는 모든 걸 혼자서 해내야 된다는 중압감이 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겉으로 표현은 안하지만 의심과 겁이 많은 성격이기도 하다. 이런 단점을 상쇄시켜줄 장점은 새로운 것을 알고, 배우며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내면 속 겁쟁이를 도전이라는 출발선 앞에 데려다 놓기까지가 어려울 뿐, 그 후 새로운 경험이 쌓이면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불안과 우울감이 높은 성격을 가진 내가 15살 때, 친구에게 말로만 매번 던져놓던 게 있었다. “나도 달라지고 싶어. 성격이 활발한 친구들처럼 말이야. 나도 자신감을 가지고 싶어. 꼭 달라질 거야.” 세상 무서울 게 없었던 중2, 버스 안에서 말로만 떠들던 나의 마음은 0.01cm씩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착각만 한 채, 여전히 10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다. 어느 하나 뛰어난 것 없이 평범한 아이, 그리고 친구들에게 그저 착한 아이라고만 불렸던 삶.


 19살, 대학입시준비를 할 때까지도 “너는 꿈이 뭐야?” 친구의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을 잇지 못하다가 힘겹게 한 마디를 뱉었다. “나는 꿈이 없어.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것 같아.” 운동도 하고, 나를 좀 더 꾸미고, 사랑해줄 걸. ‘무색무취에 존재감 없는 사람’ 그게 청소년기 스스로를 정의했던 삶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고등학교를 줄을 세웠을 때, 나는 끝이 없는 뒷줄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열등감을 지울 수 없었다.


 직업유형검사를 하면 항상 동일한 유형이 나왔다. S(사회형)와 C(관습형)이다. 사회형과 관습형에서 나온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여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게 된다. 코로나 시기를 포함하여 정신없이 직장을 다닌 4년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고, 4년차, 몸과 마음이 타버리다 못해 재가 되어 날리던 퇴사 직전까지 일을 했다. 이 일을 선택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 주어진 업무에 임했기 때문에 그만두는 것에 후회와 미련이 없었다.    

  

 퇴사 두달 전까지 인생을 살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없는 줄 알았다. 일을 마무리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인스타 알고리즘을 통해 퍼스널 브랜딩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점점 내 시야에 들어오면서 간접적으로 배우고, 여러 챌린지를 통해 참여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이고 싶었고, tvn을 통해 보고, 듣던 김미경 강사처럼 강연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카피라이터, 광고를 기획하는 마케터도 하고 싶었다. 당시 2010년대는 2020년대처럼 통합적인 직업이 아니었고, 생계유지가 어려운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어 외면했으나 빠르게 바뀐 시대 덕분에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풀어낼 수 있는 퍼스널 브랜딩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올인하여 열심히 해서 끝장을 보고 싶은 것이 생기자 자연스레 꿈이라는 게 생겼다. 내 꿈은 세계 각국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얻은 인사이트를 나만의 색깔로 풀어내서 삶이 버거운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이다. 다채로운 스토리텔러가 되기 위해 3가지 목표가 세웠다. 첫 번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철 체력을 만들어 올해 셀프 바디 프로필 찍어보기. 두 번째, 브런치 작가 도전하여 브런치 대회를 통한 종이책 출판해보기, 세 번째, 2026년 3월 세바시 무대 강연자로 초청받아 200명 청중 앞에서 15분 동안 강연해보기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던 게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이 없는 것이 더더욱 아니었다. 경쟁하며 최정상까지 가려고 노력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 성가신 일이니까 안전하고, 타성에 젖은 생활에 벗어나는 일을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2주 전, 참석한 유영만 교수의 ‘인생의 질문하라.’ 강연에서 부딪히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라는 이야기가 몸을 사리며 살아왔던 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인생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고, 스트레스를 잠과 영양가 없는 고민으로 정말 빛나는 시기를 날려버린 청소년 시절의 나에게 속상하고, 화가 나고, ‘나를 성장시켜줄 좋은 네트워크를 찾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많이 들지만 이를 거름삼아 다시 근본부터 찬찬히 다져보려 한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생각만 하다가는 내가 그리는 모습으로 가는 ‘용기’의 티켓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결과가 어찌됐든 그것만으로도 실패가 아닌 작은 성공이라고 정의하기로 하자. 포기하고 싶을 때면 생각하자. 바로 지금이 5년 후의 내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던 5년 전의 시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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